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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예지 Oct 13. 2022

주황 지붕 그 집

친구에게 추천받았던 이 숙소에 오기 위해 뚜벅이에게는 다소 험난한 코스를 감행했다. 동선에는 전혀 맞지 않는 곳이었지만 정해 둔 일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곳에다가 나의 동선을 맞추기로 했다. 도착 시각이 임박하자 사장님과의 문자 빈도가 잦아졌다. 먼저 보내 두었던 캐리어가 숙소에 도착했는데, 사장님은 일정이 있어 밖에 계신 모양이었다. 캐리어의 도착 시간도, 혈혈단신 나의 도착 시간도 미리 알려드린 것과는 무척 달라서 사장님을 여러 번 곤란하게 했다. 그는 친절하게도 먼저 도착한 내가 밖에서 오들오들 떨지 않도록 뒷문 열쇠가 숨겨진 위치를 알려주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잠깐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에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거실과 바로 이어진, 밖이 훤히 보이는 문을 똑똑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어쩐지 어리숙하고 선해 보이는 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익숙하고 재빠른 인사 뒤에 숙소에 대한 요목조목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 신속하게 끝이 나는 바람에 나는 다시금 어색한 사람 1을 맡아 두리번거렸던 그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온통 어색한 사람도 배고픔은 자연스러웠다. 저녁 식사를 시작하겠다며 맡은 배역에 충실한 모양새로 그에게 시그널을 보낸 후, 참치김밥이 들어 있는 검정 봉지를 주섬주섬 들쑤셨다.



오솔길 끝에 자리한 주황 지붕의 이 집은 창문을 열면 동백나무와 귤나무가 보였다. 스피커에서는 집과 어울리는 잔잔한 배경음악이 항상 흘러나왔고, 손님들에게도 종종 배경음악의 선택권이 주어졌다. 특히나 배경음악에 예민했던 내가 자주 선곡을 담당했다. 벚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놓인 거실에는 여러 대의 필름 카메라, 벽면 곳곳에 붙여진 그림, 미술관처럼 진열되어 있는 사진집이 있어서 사장님의 취향을 파악하기가 수월했다. 거실과 이어진 현관은 이 집의 마스코트, 커다란 개 순애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다. 신발을 벗어 두는 곳이라 발 냄새가 진동을 할 텐데도 순애는 그곳을 가장 좋아했다.


머무는 동안은 집주인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탓에 집주인 사장님을 아주 귀찮게 했다. 그는 그런 내게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좋은 공간과 집안일과 순애와의 산책 시간을 선물했다.

이 집의 뒷마당에는 귤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사장님은 농사일이 아무래도 자신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어느 밤에 푸념했었다. 시간도 많고 호기도 많았던 나는 그의 걱정을 해결해 주고 떠나기로 맘을 먹었었다. 마침 햇살이 좋았던 어느 날의 오전이 대망의 걱정 타파 시간이 되었다. 귤을 따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은근한 재미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여행까지 와서 이걸 따고 있는 내가, 탄력을 받아 열심히도 따고 있는 내가 조금 웃기기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진 사장님과의 시답지 않은 대화, 귤나무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하얗고 복슬복슬한 순애가 나의 기분을 날씨처럼 만들어 주었다.



사장님과 순애의 짧은 산책 시간을 따라나선 건 그 둘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단번에 알게 된 시간이었다. 늘 함께 시간을 보내니 저렇게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생각했다. 천진하고 순수한 그 둘의 뒤를 바라보며 걷는 일이 얼마나 즐겁던지, 졸졸 따라다니며 한참을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책을 읽으라며 수줍게 내어준 공간에서는 주로 글을 썼다. 뭣도 모르고 발을 처음 들였을 때에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워 신발도 벗고 들어갔었다. 누군가의 비밀 공간에 감히 발을 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히터를 틀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틀고, 몇 편의 글을 썼다. 나의 작업실이 생긴다면 이런 기분일까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말이다.


떠나기 아쉬운 마지막 날은 사장님의 정성 가득한 조식으로 포문이 열렸다. 전날 저녁에 최고의 요리를 대접해 달라 단단히 일러둔 상태였다. 장난이라는 걸 그도 알았을 텐데 정말 최고의 상을 차려준 것이다. 약속한 조식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완성된 요리였지만, 까치집 뒤통수를 가진 그의 분주함을 보았던 터라 도리어 고마움 마음만이 식탁 위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깨끗하게 정리된 방을 바라보자 확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렇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떠나야 하는 일은 과거의 내가 이미 여러 번 경험한 일이었다. 감사한 마음은 묵었던 방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 두었고, 남은 아쉬움은 사진을 남기는 일로 달래야만 했다. 찍어주는 이가 없어도 사진을 남기는 일에는 이미 도가 튼 프로 혼자 여행자였다. 나의 커다란 캐리어 위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10초 타이머를 맞췄다. 정확히 10초가 지나자 우리의 추억이 아로새겨졌다. 웃기게도 나왔다며 사진 속 자신의 얼굴들을 한참 비웃었다.


헤어짐은 단순해야 했다. 그 속은 복잡 미묘할지라도 겉모습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머리 위로 두 팔을 번쩍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마당에서부터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 끝까지. 주황색 지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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