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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Sep 09. 2015

<여자의 달리기>

여자가 달리기할 때 준비해야 할 것들에 관하여

6개월 전의 나였다면 쳐다도 안 봤을 책 제목이다. <여자의 달리기>라니, 이거 너무 성차별적이잖아? 남자가 달리는 거랑 여자가 달리는 게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런 내 생각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연습을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여자와 남자의 달리기는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평소 입던 브라를 착용하고 겨우 5분 뛰고는 일주일 가까이 끙끙 앓아야 했으니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가슴이 있고 없고는 아주 마-않-은 차이를 결정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여성이 트랙 위를 달리러 나가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생리 전과 생리 기간 때가 그렇다. 맨몸으로 달리기에도 견디기 힘든 땡볕 아래를 거북한 아랫배를 붙잡고 달려야 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눈물을 머금고 반 강제적으로 쉬다가 일주일 뒤 다시 뛰기 시작하면 왜 자전거 탈 때처럼 그 본능이 되살아나지 못하고 리셋되는 기분은 무언지.

임신했을 땐 어때야 하는가. 산후에는? 폐경기 때는? 남자에게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고려할 필요 없는 내용이 ‘달리기 책’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면 무수한 남성 독자들의 항의를 살 게 뻔하다. 그래서라도 여자의 달리기는 ‘어쩔 수 없이’ 별도로 나와야 하는 책이다.


*책에서 월경 주기와 달리기의 상관 관계를 언급하지만 결론적으론 직접적인 답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모든 여성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대신 달리는 동안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계속 기록, 자신의 월경 주기와 매월 발견되는 달리기 능력의 변화 양상을 관찰해 그 연관성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을 권한다. 


인터넷 서점 후기를 찾아보니 ‘달리기 개론서치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맞다. 달리기 초보자에겐 이 책이 다소 과할 수 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려는 독자에게는 이안 맥닐의 <잘 달린다>를 권한다. (달리기의 고전서라 해서 사긴 했는데 솔직히 판형이나 디자인은 후졌다. 좀 더 현대적이고도 최신판 정보를 담은 달리기 책을 아는 분이 계시면 댓글로 추천 바란다)


달리기는 시작이 가벼워야 한다. 무작정 러닝화와 러닝 수트를 갖춰 입고 시작했다간 의외로 쉽게 뻗어버릴 수 있다. 특히 나처럼 어렸을 땐 체육계의 꿈나무(?) 취급을 받다 과체중으로 바뀐 타입이라면 과욕이 제 몸을 앞서버려 힘들어질 수 있다. 의욕이 꺾이는 경험이 쌓일수록 인간은 더욱 위축되고 도전하려는 대상에서 멀어지게 된다.


끝으로 이 책에서 건진 ‘러닝화 끈매기 꿀팁’ 올려둔다. 운동화의 맨 윗 구멍은 어떨 때 쓰는 건지 용도를 몰랐는데 그 끈이 있는 구멍 위에 고리를 만든 뒤 서로 가로질러 고리 사이로 끈을 넣고 조이면 발등은 꽉 잡아 주고 뒤꿈치 부분은 덜걱거리지 않는, 착화감 1000%의 운동화가 된다. (나는 이 사실을 발견한 뒤 내가 가지고 있는 운동화를 모조리 이런 식으로 바꿔 맸다. 끝에 리본 맬 때 짧아지는 감은 없지 않지만 최소한 발뒤꿈치 까질 일은 없을 듯하다. 


* 내가 생각한, 지극히 주관적인, 달리기를 시작하는 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여성 버전)


1. 스포츠 브라 

반.드.시. 필요하다. 스포츠 브라는 가슴을 매우 잘 지지해 줘서 쿠퍼인대 손상을 막는다. 아무리 가슴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란 사람이어도 꼭 필요하고 큰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다. 

운동전문가들은 쇼크업소버나 언더아머를 1순위로 추천하지만, 달리기에 몸을 담글까 말까 한 시점에 최소 6만 원 이상을  브라 한 벌에 투자하기엔 머뭇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포에버21에서도 충분히 저렴하면서도 쓸만한 브라를 살 수 있다. 단 ‘하이서포트(Hi-support)’라고 표기된 걸 고른다.

서포트는 브라의 지지 강도를 뜻한다. 미드서포트는 헬스클럽에서 하는 정도의 운동용, 로우서포트는 요가 수준의 운동에 적당하다. 디자인은 당연히 미드나 로우서포트가 다양하고 예쁘다. 디자인만 믿고 미드/로우서포트를 입고 달리고 난 뒤의 가슴 통증은 책임질 수 없다. 

쇼크업소버나 언더아머는 달리기가 내 평생 지고 갈 업이라는 확신이 들 때, 운동하면서 내 몸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됐을 때 사도 늦지 않다. 그때 가면 더 자기 몸에 맞는 걸 고르기도 쉬울 것이다.


2. 러닝화

빤한 표현이지만 자기에게 잘 맞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면 더 좋다. 과한 형광색이 거슬리는 건 사실이지만 달리기 전용도로가 드물고 자전거 인구와 트랙을 나눠 써야 하는 요즘 분위기에서는 눈에 잘 띄는 형광색을 신는다면 굳이 “내가 여기서 달리고 있소!”를 내내 소리치며 뛸 필요가 없어 편하다.


3. 통기성 좋은 상하의

면티, 면바지는 최악이다. 더울 땐 두 배로 덥고 추울 땐 세 배로 춥게 만든다. 심지어 오래 뛰다 보면 자주 접촉되는 부위가 쓸리고 아프기까지 한다.

비싼 걸 안 입어 봐서 비싼 만큼 값하는 운동복에 대한 평가는 못 내리겠다. 이것도 어느 정도 목표 달성 뒤 사려고 위시리스트에만 넣어 두었다. 

나는 틈틈이 백화점이나 아울렛 운동용품 매대에서 긴급 세일하는 운동복들을 사 둔다. 모두 2만 내외로 구입할 수 있다. 더 싼 걸 원하면 포에버21과 유니클로(상의, 유니클로 에어리즘)도 있다.


4. 반창고

길들여 놓은 운동화에도 뒤꿈치는 까진다는 걸 얼마전 경험했다. 6킬로 가까이 갔다가 뒤꿈치가 벗겨진 거다. 집에 가고 싶은데 택시를 잡을 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확 맨발로 걷고 싶었다. 일본에서 나온 케어리브 밴드가 잘 붙어 있다고 해서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힘. 비싸기만 하다. 보통의 평범한 밴드 두 개 정도면 충분하다


5. 스마트폰에 음악 채우기

요즘은 BPM에 맞춰 디제이가 믹싱하듯 자기 폰 안에 있는 음악들을 골라 틀어주는 앱도 있지만, 곡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음곡을 틀어버려 김 빠진 적이 몇 번 있다. 자기가 들으면 힘나는 곡들 위주로 30분-1시간짜리 트랙 리스트를 만들어 둔다. 


6. 러닝 앱 & 러닝 코치 앱

나이키 러닝 앱과 나이키 퓨얼 앱(모두 무료)에 차곡차곡 쌓이는 내 적립 거리를 보면서 능률을 쌓는 것도 도움된다. 같은 앱을 깐 지인들과 친구를 맺으면 거리나 시간 경쟁을 할 수도 있다. 단 자기와 비슷한 정도의 실력자와 챌린지를 할 것. 지나치게 잘하는 사람과 친구 먹으면 의기소침해질 수 있다. 나처럼.

러닝 코치 앱은 달리기에 차근차근 적응하는 훈련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를테면 60초 걷고 60초 뛰고, 90초 걷고 90초 뛰기를 서너 번 반복해야 하는데 매번 시계로 재는 덴 무리가 따른다. 운동을 시작할 때 나이키 러닝 앱과 동시에 실행시키면 일정 시간이 되었을 때 “Begin walking/running”이라고 말해준다.

러닝앱은 런키퍼(Runkeeper)도 유명한데, 개인적으로 달리기를 잠시 멈추거나 다시 달릴 때를 감지하는 게 시도 때도 없이 민감하다고 느껴졌다. 나이키앱과 한 번씩 써 보고 자기에게 맞는 앱으로 정착하면 된다.


*마실 물도 당연히 필요하긴 한데, 5킬로미터 이상의 먼 거리를 달릴 게 아니라면 물병은 달리기 할 때 되려 거추장스러웠다. 천 원짜리 한 장 정도 챙겨 뒀다가 달리기 마무리 코스를 슈퍼 앞으로 정한 뒤 거기서 사 마시는 걸 더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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