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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Dec 29. 2018

<엄마 되기의 민낯>

 이론들의 그물이 아이에게 던져지지만 엄마들이 그 안에 붙잡힌다

아내 = “집 안 여기저기 쌓여 가는 무급노동을 하기 위해 유급노동을 그만둔 사람”

나중에 다루겠지만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를 읽은 후 엄마들을 주제로 한 책들에 흥미가 생겼다. 마침 리디북스에서 무료 대여 이벤트를 하기에 선택(지금도 하는진 모르겠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목 그대로 저자는 육아의 고뇌와  가사 일 분업을 비롯한 결혼 생활 등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글도 그냥 잘 쓰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잘 쓴다. 어떻게 어디서 이렇게 숨어서 엄마 노릇을 하며 고생하고 계시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을 잘 써서 형광펜 기능으로 줄을 그어 둔 부분이 (지금 세어 보니) 31군데나 된다. 그 가운데 몇 대목(어쩌면 많은 대목)을 옮겨 와 본다. 특히 엄마 간 친구 사귀는 법에 대한 팁은 저자 역시 다른 책에서 빌어온 것이지만 아주 좋았다. 



그럴듯한 글과 사진으로 타인에게 공감과 부러움을 받으려는 욕망, 집에서도 클릭 하나로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뒤엉킨 결합체.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이, 완벽한 남편이 있는 세상은 판타지처럼 매혹적이다. 꾸미고 싶어도 꾸밀 수 없는 일관된 태도와 시선은 부럽고 샘나며, 다듬고 매만진 순간을 그림처럼 박아 두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나를 들쑤신다.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접속한다.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매혹되고, 자책과 열등을 느끼면서도 동경한다. 나도 모르게 찍고 편집해 또 올린다. SNS는 단순한 눈요기일까.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일까. 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까. 다른 이유는 몰라도 SNS가 수시로 찾아오는 무료함, 지루함과 외로움, 관음증과 과시욕, 그리고 인정 욕구를 달래 주는 손쉽고 간편한 도구란 건 확실하다. 각자의 좁은 방에서.


- [모두 화려한데 나만 구질한 SNS 육아] 중에서


세 번째는 엄마 성향이다. 『엄마 같지 않은 엄마』의 저자, 세라 터너는 “아이 키우는 건 정말 X 같지 않아요?”라고 물어봤을 때 오만상 찡그리며 정색하는 엄마와 푸하하 웃으며 “맞아요.”라고 맞장구치는 엄마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아이 엄마 친구를 찾는다고 했다. 나 역시 모성애 지수가 지나치게 높은 엄마와는 불편했다. 자식 흉도 맘 편히 보면서 육아의 애환을 나누는 사이, 서로를 판단하는 엄마가 아니라, 서로 나쁜 엄마가 아니라고 위로해 줄 친구를 원했다.


남의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1인칭 화법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기.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아이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그렇게 서로 인간적인 연민과 우정이 쌓여야만 관계가 여러 가지 오해와 불편을 딛고서라도 꾸준히 갈 수 있다고 몇 년 앞서 아이를 키운 엄마들이 얘기해 주었다.


- [엄마에게도 친구가 필요해] 중에서


가사 분담은 역할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다. 같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데 있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이다. 하물며 먹고 난 컵은 씻어두고 배가 고프면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뭐라도 차려야 한다. 양말을 뒤집어 아무 데나 벗어던지지 않고 먹고 난 과자 봉지는 휴지통에 버리는 등 자기가 머물고 난 자리를 치우는 상식은 있어야 한다. 누군가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여자, 아내, 엄마, 주부라는 이유로 다른 식구가 흘리는 온갖 부스러기를 군소리 없이 온종일 줍고 다녀야 할 의무는 없다.


남편이 일을 안 해도 남편 잘못이 아니라 제대로 시키지 않은 아내 잘못이다. 마감 시간은 물론, 해야 할 일도 매번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한다. 그뿐인가. 기죽게 지적질해서도 안 되며 무조건 칭찬하고 감사해야 한다.


아내에겐 ‘시키는 노동’, ‘칭찬 노동’, 이중의 감정 노동을 부과한다. 못하면 아내 탓, 잘하면 남편 탓이다.


어려운 회사 일도 잘하고 그 힘들다는 군대 생활도 했는데 왜 집에서 벌어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엔 모른 척 눈 감을까. 다른 조직과 비교해 보니 알겠다. 자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하지 않아도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버티면 누군가 한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하지 않고 시켜도 미루고 성내면 그제야 선심 쓰듯 한다. 책임질 필요 없고 잘할 욕심도 없으니 대충 한다. 설거지만 해도 행여 잘하면 더 시킬까, 마구 사방에 물을 튀겨 싱크대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저 필사적인 몸부림.


아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보드라운 호칭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노동자의 다른 이름. 『아내 가뭄』에서 애너벨 크랩은 아내를 “집 안 여기저기 쌓여 가는 무급노동을 하기 위해 유급노동을 그만둔 사람”이라 정의한다.


- [남편과의 가사분담 투쟁기록 ‘우리 싸웁시다’] 중에서


‘바깥일’ 힘들다고 말하지만 요즘 세상에 바깥일 안 해 본 여자 있나. 나도 왕년엔 남자에게 뒤지지 않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아이를 돌보는 여자를 두고 자기만 평생 돈 벌어 온 사람처럼 행동하곤 했다. 심지어 성인에서 아이로 퇴행하기도 했다. 누군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 착각을 이유로. 이 점이 출산 직후 육아하는 여자를 극심하게 좌절케 한다.


-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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