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과의 전쟁

by 저축유발자

욕심 :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수년간 잘 조절하고 있던 제 내면의 욕심이 요즘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욕심을 내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너무 큰 욕심은 부리지 말라고 하는 편입니다.

"욕심"이라는 단어를 최근에 많이 쓰게 되면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첫 문장처럼 나왔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단어는 "분수"입니다.



분수에 넘치게 뭔가를 탐한다면 그건 욕심이고, 분수에 딱 차게 뭔가를 원한다면 그건 어떻게 보면 자산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 과연 나의 "분수"는 어디까지에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욕심 좀 부려서 일 좀 해 봐라."라고 한다면 아마도 당사자는 주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사자인 스스로는 자신의 분수를 너무 낮춰서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과연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마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서의 "분수"와 남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서의 "분수"를 가지고 정의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요즘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평소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목표 이상을 제 스스로가 원하는 느낌이 자꾸 들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제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제 인생이 그냥 편안한 정도의 딱 그 정도 수준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에게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가 생각하는 분수와 남이 생각하는 저의 분수에도 아마 격차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남이 생각하는 분수는 사실 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저를 통해서 얻고 싶어 하는 결과이지, 제가 제 자신을 밀어붙여서 얻고 싶은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딱 지금의 수준이 좋기 때문에 그냥 만족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생, 돈 등에 대해서 뭔가 욕심이 살짝 생기고 있습니다. 지금이 딱 좋긴 한데 그래도 한 발만 더 가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최근에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긁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긍정적인 영향을 통해서 제 스스로가 저를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자산관리에 있어서도 뭔가 욕심을 좀 더 부려서 자산을 더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에 따라 이것이 욕심이 될 수도 있고,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과 능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마치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 발을 더 나아가려는 행위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 하나 더 높은 계단에 설 수도 있고, 아니면 살짝 내리막을 디디면서 조금 굴러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돈을 뺀 나머지 인생의 부분에서도 욕심이 나는 것이 좀 생겼습니다. 뭔가 하나를 더 한다면 나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그런 욕심인데, 사실 그것을 하게 되면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을 몇 년간은 지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욕심...
분수...

과연 저의 분수는 어느 정도이며, 어디부터가 저에게 욕심이 되고, 어디까지가 저에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욕심을 부리고 계시나요? 아니면 욕심을 부려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과연 결과는 어떠했나요? 그때에는 욕심이었지만 지금은 욕심이 아니라서 다시 한번 도전을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잠깐 주식 시장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사실 주식 시장은 언제부터 상승이었다가 아니라 그냥 평생 상승 중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상승이 있고 그냥 조용한 상승이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10년이란 시간을 천천히 걸어서 100km의 길을 이미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고 욕심이 난다면서 전속력으로 2년 만에 100km를 가보겠다고 하면 그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며 자신의 분수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기도 전에 항상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왔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개인의 분수가 다르니 같은 목표를 향해서 뛰었을 때 당연히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고,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가 생길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긴 등수는 사실 밖에서 누군가가 채점을 하는 등수입니다. 개인으로 봤을 때에는 목표를 지우고, 단체로 시합을 했다는 사실을 지운다면 그냥 같은 시간을 각자의 페이스로 달려오면서 그냥 추억과 기억이 생기는 것뿐입니다.

누구는 천천히 걸어서 10km를 오면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이고, 누군가는 전속력으로 뛰어서 땀벅벅이 되서 1km에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뜀뛰기를 멈추더라도 그런 스프린트가 즐거웠으면 그냥 그 자체로 행복할 것입니다. 스프린트에는 재능이 없지만 장거리에 재능이 있어서 같은 시간 15km를 온 사람은 자신이 제일 멀리 와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장거리에 맞는 재능을 사용해서 자신이 온 거리가 그냥 그대로 좋은 것뿐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해 봤으니 그 이야기에 끼기 위해서 나도 해 봐야 하고, 남들이 다 가 봤으니 나도 사진이나 한번 찍으려고 꼭 가야 하고, 남들은 뭐라고 하니 나도 그 정도는 해 봐야 하는 그런 것이 과연 세상에 존재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냥 각자의 분수에 맞춰서 그냥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우리 아들, 딸이 다 대단해 보이니 욕심을 좀 더 부리면 뭔가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윽박지르기도 하고, 배우자 입장에서도 상대방이 좀 더 욕심을 부리면 좋은데 그냥 느긋하게 있는 것이 꼴도 보기 싫어서 잔소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 자신이 평가한 분수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바라본 분수로 생긴 욕심일 뿐이죠. 너무 느긋해 보이는 배우자, 자녀도 그런 모습 또한 그게 그들의 분수인 것입니다.



저도 요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이것이 욕심인지 아닌지를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욕심이라고 판단이 되더라도 도박성, 투자성 도전을 하고 싶다면 욕심을 좀 부려본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욕심부려서 괜히 신경 쓰일 일만 많아지고, 스트레스만 더 받는다고 판단이 되면 저의 분수의 높이를 낮추고 그냥 제 스스로 타협하고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또 다른 생각할 거리가 생겼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2월입니다. 2026년의 십이 분의 일이 지나갔습니다. 12개의 빵 중에 한 개를 먹었으니 이제 11개의 빵만 눈앞에 놓여있습니다. 이 빵이 다 사라지면 2027년이 또 오겠죠. ^^

매 순간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뭐든 매 순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다만 그래도 가끔은 집중해서 뭔가를 열심히 살짝 해 보는 것도 100년 인생에 기억에 남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저의 분수를 찾기 위해서 살짝 집중을 해 볼까 합니다. ^^ 여러분도 자신의 분수를 잘 찾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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