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사람들은
왜 더 행복하게 보일까?

이방인이 본 행복론

by 뉴욕의 이방인

미국에서 은행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하루는 사무실의 동료들끼리 얘기하다가 한 사람이 자기 학교 자랑을 했다. 자기 학교 자랑을 엄청하는 걸 보니 당연히 아이비리그의 명문 대학교를 졸업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가 졸업한 학교는 그 지역에서는 알아주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학교가 아니었다. '저 친구는 어떻게 저런 별 볼 일 없는 학벌로 자랑을 할 수 있지? 미국 사람들은 참 소박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큰 딸이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발표하는 음악발표회에 갔다. 나름대로 지역에서 이름 있는 학교여서 학교 오케스트라도 연주를 얼마나 잘할까 기대가 컸다. 오케스트라에서 큰 딸은 색소폰을 연주하기로 했는데 딸이 연주하다가 실수해서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까지 하였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면서 실망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악기 연주를 잘하는 학생들도 몇 명 있었지만 실수를 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웃고 떠들면서 즐거워하는 애들을 보면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별로 연주를 잘하지도 못하고 실수도 했는데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미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란 아내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내가 너무 기대하는 수준이 높은 건가?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보인다. 미국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느낀다고 하는 주장은 유엔산하 기관에서 조사한 국가별 행복지수를 보아도 타당성이 있다. 미국은 143개의 나라 중에서 23위고 한국은 52위다. 일본,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 모두 50위 밖이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보다 더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의 눈을 덜 의식하기 때문에 더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날씨가 추운 날 반바지를 입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꺼운 외투에 모자를 눌러쓰고 눈만 내놓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날씨에도 본인이 느끼는 것에 따라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추운 날 반바지 입고 지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이러한 남들의 시선 때문에 본인은 춥지 않다고 느껴도 막상 반바지를 입고 거리에 나가지는 못한다. 롱 패딩이 유행하던 몇 년 전 한국에 나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롱 패딩만 입고 다니던 일도 비슷한 맥락이다. 남들보다 다르게 튀어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인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기대치가 더 낮고 소박한 것에 만족해서 행복을 더 느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 사람들도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비슷하지만 한국만큼 최고의 명문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적은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는 경쟁 때문에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직을 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의 대학을 나와도 웬만하면 취직해서 먹고사는데 큰 걱정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에 이민 온 한국 사람들도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삶에 대한 기대가 높다. 자식들을 꼭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을 보내야 하고 자동차도 최고급을 타야 성공했다고 느낀다. 의뢰인 중에 한 분은 자기 아들은 꼭 하바드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하바드(Harvard) 아니면 노바디(Nobody)"라고 까지 했다. 다른 한 분은 재정이 어려워서 파산을 하게 되었다. 내가 리스한 벤츠 자동차를 포기하고 리스 회사에 반납하라고 조언하자 자기는 주일에 교회 나갈 때 꼭 타야 하기 때문에 반납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에는 매달 큰돈의 리스 비용을 계속 부담하면서 까지 차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덜 느끼는 걸까? 땅은 좁은데 사람이 많아서 경쟁이 심하고 이런 경쟁 자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까? 어렸을 때부터 입시 경쟁에서 치여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열을 매기고 남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럴까? 서은국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한국 사람들이 덜 행복하게 느끼는 이유로 집단주의를 꼽았다. 지리적으로 좁아 함께 경작해야 하는 농경문화와 유교적 가치관이 배어있는 한국에서는 개인의 가치와 감정을 서양보다는 덜 수용하는 문화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위계와 서열이 중요하고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즉 내가 느끼고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행복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100% 동감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하는 점은 내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그 차이를 실감한다.


한국은 25년 전 내가 미국에 올 때 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잘 살고 모든 시설들이 최신식이고 깨끗해서 부럽다. 하지만 사람들은 뭔가 바쁘고 쫓기는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스마트폰 전파가 잡히고 wifi가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뉴욕에서는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 많다. 처음에는 한국이 부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하철에서 전화 연결이 안 되니 책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멍 때리고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가면 처음 1-2주일은 신나고 재미있지만 더 지나면 정신이 없다. 퇴직 후에 한국에 들어가 살 생각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좀 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것이 어디에 살든지 더 행복을 느끼는 지름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