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을 사주면서 아들에게 고맙다는 부자 어머니의 이야기
빌딩을 사는 의뢰인, 빌딩을 파는 셀러, 셀러 변호사, 타이틀 클로저, 은행융자 담당자들이 모두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내 의뢰인의 아들이다. 상속설계의 일환으로 빌딩을 사는 어머니가 아들 이름도 같이 등기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뢰인의 아들도 와서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 회의실 문이 열리자 반바지를 입은 어린 아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다 어머니를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 바쁜데 내가 꼭 사인해야 해?"
어머니는 금방 끝난다고 아들에게 말하며 나에게 빨리 사인을 받으라고 눈짓을 한다.
나는 순서대로 준비된 서류를 내밀어 서둘러 아들의 사인을 받았다. 은행 담당자가 사인된 서류를 가지고 가서 검토하고 수표를 준비하는 동안 아들은 "사인 다 했으니 가도 되지?"라고 어머니를 재촉한다. 어머니는 은행 담당자에게 아들이 바빠서 그러는데 더 사인할 서류가 없으면 가도 되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은행 담당자는 사인된 서류가 모두 확인되었으니 바쁘시면 먼저 가셔도 된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 수고했어. 가도 된대. 고마워"
아들은 훌쩍 나가버리고 한국어를 알아듣는 나와 은행 담당자는 어색함에 얼굴을 돌렸다.
'빌딩을 사주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고마워할 일인가?' '이런 빌딩을 부모님이 나에게 사주신다면 나는 수천번이라도 절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노년의 의뢰인은 맨해튼의 드라이클리닝 공장을 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분은 30년 넘게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돈도 많이 버셨지만 나이 때문에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공장을 팔 수도 있지만 "이익이 잘 나는 사업을 남에게 파느니 딸과 사위에게 물려줘서 고생하지 않고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는 딸에게 넘겨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딸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공장 부지의 남은 공간에 많은 비용을 드려 추가 설비까지 설치했다. 그 결과 들어오는 빨래 물량을 처리하는 능력이 두 배로 늘어났다. 이제는 딸 부부에게 물려주었으니 딸 부부가 열심히 운영해서 더 많은 빨래 물량을 확보해서 더 많은 수익으로 잘 살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결과는 아버지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딸 부부는 6개월 만에 공장 운영이 너무 힘들다고 포기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미 많은 추가 투자금을 들여 규모를 키웠지만 이제 와서 공장을 팔려고 하자 투자금을 회수하기는 어려웠다. 공장 규모가 너무 커서 쉽게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더욱이 딸 부부가 공장을 열심히 운영하지 않아서 매출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차라리 처음에 그냥 공장을 팔 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자식 잘 되게 하려는 일념으로 한 선택이 오히려 아버지의 노년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게 되었다.
의뢰인들의 빌딩 매매를 진행하다 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부모가 사망한 뒤 유산으로 물려받은 빌딩은 시세보다 싸게 팔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연로하셔서 빌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수리해야 할 곳이 많고 그 결과로 건물국에서 위반 사항으로 지적받아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빌딩을 물려받은 자식들은 빌딩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수리하기도 귀찮으니 시세보다 싸게 팔아버리려고 한다.
부모에게 빌딩은 평생을 고생해서 장만하고 관리해서 키운 "삶의 결과"이지만 자식에게는 그저 "갑자기 생긴 재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이 고생하지 않도록 무조건 재산을 넘겨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고생하더라고, 자식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데 있다. 자식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재산은 축복이 아니라 독이 된다. 때로는 부모의 노후를 잠식하는 위험이 된다. 평생 쌓은 재산은 자신의 삶을 지키는 데 써야한다. 그다음은, 자식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