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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역설:

완벽한 선택을 찾다가 그냥 선택하는 우리들에게

by 뉴욕의 이방인

휘발유를 넣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미국은 각 주(State)의 법과 규정이 조금씩 다르다. 세금 책정 비율도 다르다. 내가 사는 뉴욕주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가면 뉴저지주인데 휘발유 가격이 다르다. 뉴저지주는 휘발유에 대한 세금이 낮아 1갤런당 심한 경우 뉴욕보다 1달러까지도 싸다. 나는 매주 일요일에 달리기를 하러 뉴저지로 넘어갈 때마다 1주일치 휘발유를 가득 채워 돌아온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뉴저지에 있는 주유소들도 위치에 따라 휘발유 가격이 들쑥 날쑥이다. 그렇다고 어떤 주유소가 다른 주유소에 비해서 항상 싼 가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주유소마다 다르다. 싼 주유소를 찾기 위해 도로를 달리면서 지나가는 주유소의 가격판을 비교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어떤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기 직전까지 휘발유 가격을 비교하다가, 결국 조금 비싸더라도 그냥 마지막에 보이는 주유소에서 주유한다. 왜냐하면 차를 돌려 다시 가장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가는 것이 더 피곤하고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더 저렴한 가격을 찾으려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완벽한 선택을 하려다 오히려 손해

이것이 바로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좋은 결정을 내릴 것 같지만, 선택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커져 만족감이 낮아진다는 개념이다.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책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Why more is less)》에서는 "'완벽한 선택'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대신, '적절한 선택'을 하라.”라고 조언한다. 선택지 중에서 최고의 선택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두뇌는 피로해지고, 결정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스트레스 때문에 선택을 안 하거나 선택을 미루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에 이르기도 한다.


나의 주유소 고민도 마찬가지다. 이론적으로 가장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는 것이 완벽한 선택일 수 있지만, 매번 가격을 비교하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냥 여기서 넣자’라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는 불필요한 고민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오히려 다른 주유소 보다 더 비싼 가격에 기름을 넣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내가 물건을 살 때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전자기기를 사기 위해 수십 개의 리뷰를 읽고, 비교 사이트를 뒤지며 가장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막상 결정을 내리고 나면 ‘혹시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까?’ 하는 불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만족감이 떨어지는 이유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뇌가 더 불안해진다

뇌 과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 불안과 걱정을 촉발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걱정해야 할 것이 많아지고, 우리의 뇌는 더 피로해진다. 알렉스 코브(Alex Korb)가 그의 책 <<우울할 땐 뇌 과학(The Upward Sprial)>>에서 모든 게 불확실할 때, 뇌의 편도체(Amygdala)는 더욱 예민해지고 반응성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증가하며,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에 빠질 수도 있다. 즉, 우리가 선택을 미룰수록 스트레스가 더 커지고, 작은 결정조차 어렵게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일단 한 가지를 결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더 쉽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적절한 선택이 해결책

결국 선택 사항이 많은 경우 해결책은 단순하다.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적절한 선택을 하라." 선택의 폭을 좁히고, 가능한 한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요일 달리기를 끝내고 오는 중간에 주유소들을 비교해 보니 주유소 한 곳이 매번 최저 가격은 아니지만 대부분 다른 주유소에 비해서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이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채우는 습관을 만들었다. 여기저기 주유소들을 비교하는 시간과 노력을 감안하면 한 곳을 정해 놓고 매주 일요일에 기름을 채우는 것이 오히려 평균적으로 볼 때 적절한 선택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더 좋은 예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일단 글을 올리자. 더 좋은 생각이 나면 그때 가서 고치자. 이것이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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