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려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친 나에게

by 뉴욕의 이방인

나는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매일 사람을 만나야 하는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해하고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정반대이다. 혼자서 영화도 보러 가고 혼자서 미술관도 잘 간다. 운동도 테니스나 골프 같이 짝을 이루어하는 운동을 싫어하고 수영이나 달리기 같이 혼자 하는 운동만 한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과는 안 맞게 매일 의뢰인들을 만나야 하는 변호사 일을 하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처음에 사무실을 열고나서는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넓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나의 본마음과는 반대로 교회, 한인회, 동문회, 변호사 모임, 무슨 위원회 등등 닥치는 대로 참석해서 무조건 아는 사람의 수를 늘리려고 했다. 사무실에서 의뢰인들과 만나서 케이스에 대해서 하루 종일 얘기했다. 업무가 끝나면 여러 행사에 할 수 없이 참석해서 지루한 얘기들을 들었고 알맹이 없는 얘기를 떠들어 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집에 와서는 입을 벌리는 것조차 싫었다.


인간관계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딸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애들 학교에서 학부모로 알게 된 여섯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가기도 했고 대학 동문들과 여행을 같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면 할수록 어울리는 즐거움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내가 너무 민감해서인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이것이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코로나가 발생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 나는 좋았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교회 예배도 동문회 모임도 없어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체가 모두 없어졌다. 한 번 바뀐 사회의 흐름은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의뢰인들이 예약하지도 않고 사무실에 불쑥 오곤 했다. 이제는 미리 예약하지 않고 오는 의뢰인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 법원 회의도 Zoom을 통해서 화상으로 한다. 예전에 일일이 법원에 가서 사람들을 만났던 일들도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해결된다. 사람들을 덜 만나게 되는 나는 살 맛이 났다.


이런 변화는 두 딸이 성인이 되어 독립한 영향도 컸다. 학자금과 생활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의뢰인 수를 늘려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에서도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 치이지 않고 나의 본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상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너무 소원해지면 나 죽었을 때 누가 장례식에 와서 슬퍼해주지?" 한편으로는 "나 죽으면 끝이지 내 장례식에 사람들이 오고 안 오고 가 뭐가 중요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한 후배에게 조심스럽게 이런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 후배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툭 내뱉었다. "형, 인생은 독고다이야. 결국은 혼자야. 장례식에 누가 오는 게 뭐가 중요한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지를 만나서 반가웠다.


최근에 오랫동안 일을 맡겨주신 75세의 의뢰인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원래 건강하셨던 분이었는데 최근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다. 지난 11월에 클로징 때문에 사무실에 오셔서 오랜만에 뵈었다. 건강했던 분이 휠체어를 타고 겨우 오셨다. 떨리는 손 때문에 서류에 서명하시는 것도 부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마쳤다. 12월 마지막 날에 결국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부인을 통해서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어서 부인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부인께서는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의 부고를 전하지 말고 가족들끼리만 단출하게 장례식을 치루라고 유지를 남기셨다고 했다.


한국에서 장례식장 폐업이 속출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조문객이 꾸준히 줄었고 빈소 없이 화장하는 무빈소 장례나 가족장, 1일장 등이 늘어난다고 한다. 장례식에 대해서 내가 느꼈던 점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확신이 섰다. 할 수 없이 인간관계에 끌려다니면서 살지 말고 내 행복을 위해서 내 성격대로 살자는 결심이 섰다.


폴 칼라니티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중병이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라고 썼다. 이어령 선생님은 "메멘토"에서 죽음을 늘 의식하는 사람은 삶이 또렷해지고 하루하루를 더 진지하게 살아가게 된다고 하셨다. 즉 죽음이라는 본질 앞에서 불필요한 허상들이 사라지고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선택과 집중이 생긴다고 하셨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이제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쓸데없는 인간관계에서 낭비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그 에너지를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모임이나 내가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위해 쓰려고 한다.


나는 매주 일요일 새벽 6시에 달리기 동호회 회원들과 같이 뛴다. 아름다운 허드슨 강변을 2시간 정도 뛰고 나서 가까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한잔씩 하고 헤어진다. 회원들의 개인적인 얘기도 듣고 다음에 참가할 마라톤 경기에 대해서 계획도 하면서 30분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이 모임은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고 충전시켜 준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이 모임에는 더 열심히 참석하기로 했다.


또한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갖기로 했다. 접는 자전거를 사서 기차를 타고 자연이 좋은 주립공원들에 가서 혼자서 자전거로 돌아다닐 계획을 한다.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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