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파도에서 살아남는 법
몇 년 전 동네 세탁소에 양복을 맡기러 갔을 때였다.
한인 사장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SBA 융자 빨리 신청해야겠어요.”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은 며칠 전에 재원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 정부의 소규모 비즈니스청(SBA)은 경제피해 재난 대출
(Economic Injury Disaster Loa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규모 비즈니스에 3.75%라는 낮은 이자로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만 달러까지 지원했다.
많은 비즈니스에게는 말 그대로 생명줄 같은 지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신청자가 몰리다 보니 시간 내에 서류를 미리 준비하고 빠르게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했다.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준비가 늦으면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실제로 접속해서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세탁소 사장님도 그중 한 분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실망하실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돈을 벌기 어려워지는 이유는 단순히 체력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이 바뀌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회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지난 몇 년 사이 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어떤 비즈니스도 이제 기술과 무관하게 존재하기 어렵다.
변호사 업무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는 계약서를 팩스로 보내고 손으로 수정했다.
그다음에는 이메일과 워드 파일로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지금은 AI가 계약서를 읽고 불리한 조항을 찾아 수정까지 해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업무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계약서를 프린트해서 손으로 수정한 뒤 스캔해서 보내오는 변호사들도 있다.
효율성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기술 변화는 특정 직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2014년도만 해도 한국의 개인택시와 같은 뉴욕의 옐로 택시 면허는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다.
하지만 우버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2018-2019년도에 면허 가격은 20만 달러 이하로 떨어졌고 지금은 10만 달러도 되지 않는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많은 이민자들이 한창 비쌀 때 융자회사를 끼고 옐로택시 면허증을 샀었다.
곧 우버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매달 융자금을 갚지 못해서 차를 차압당하고 남은 융자금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한 때 엘로우 택시 운전자들이 자살하고 파산하면서
뉴욕타임스 기자가 한국인 옐로 택시 기사들의
상황에 대해서 나에게 문의해 온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한때 안정적인 자산으로 여겨졌던 면허증이 몇 년 사이에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
기술이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인 마켓 주변에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공테이프에 복사해서 빌려주는 대여점이 많았다.
당시에는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2005년 어느 의뢰인이 이 대여점을 팔았을 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잘 되는 비즈니스를 왜 팔지?”
하지만 2006년에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이 사업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의뢰인이 왜 가게를 팔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이미 변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기술 자체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태도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는 느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마음이 줄어든다.
복잡해 보이는 기술을 보면
시도하기도 전에 머리가 아파진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아버지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싶어 하셨다.
몇 번이나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결국 포기하셨다.
“너무 어렵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아버지 나이가 되니 그 마음이 이해된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기술에 압도되지 않고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 일정시간 또는 매주 일정시간을 할애해서 새로운 기술을 테스트하고 활용해 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야 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이라는 책에서 저자 제임스 클리어(James Clear)는 이런 말을 한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겁이 나서 뇌가 거부한다".
따라서 뭘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에 본인을 노출하는 빈도를 높여서 익숙해지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나는 웹사이트를 관리하기 위해서 HTML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연하게 Mimo라는 앱을 알게 되었는데 매일 5분 정도 HTML부터 시작해서 CSS, JavaScript, SQL 등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코스이다.
매일 5분 배워서 얼마나 배우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노출의 빈도다.
예전에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 처음부터 끝까지
매뉴얼을 정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초반에 지쳐 포기하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다음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
"모든 학생들이 영문법에서 명사는 박사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영문법 책들이 명사에 대한 설명으로 책을 시작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과도한 의욕을 가지고 명사 챕터를 정복하겠다고 대들었다.
나중에는 지루해서 초반에 포기하고 더 중요한 다음 챕터로 못 넘어간다는 우스개 소리였다.
이제는 접근 방식을 바꾸었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먼저 찾는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능만 먼저 배운다.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부터 쓰면 된다.
핵심 기능을 알게 되면
아주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한다.
나는 처음에 ChatGPT로 이메일 답장 작성을 자동화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계약서를 분석하고 의뢰인에게 불리한 조항을 찾아내고수정 방향까지 제안하는 수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처음부터 복잡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 아마 포기했을 것이다.
기술 변화는 거대한 물결과 같다. 그 물결에 휩쓸리면 허우적거리다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핑을 배우면 그 물결을 탈 수 있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새로운 기술에 노출되고
핵심 기능을 이해하고
작은 성공을 반복하는 것
이 세 가지만 반복하면 된다.
기술은 젊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멈춘 순간 기회도 함께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