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 일지

40세 증권사 싱글남의 여피스런 일상다반사

by Jeremy Yeun


7개월만에 쓰는 독거일지. 이제 나이의 앞 숫자도 바뀌었군요. 올해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까 합니다. 생각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독거일지 - 40대 초반의 남자의 결혼 생각


DSC_1852(2).jpg 맨체스터 영국 2016


금요일 밤 퇴근 후 운전하기도 버거워 차에서 누워있다가 집에 어떻게 와서 또 쓰러지고 새벽에 다시 깼다. 무려 10시간 가까이 잤지만 이번 주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두통은 미약하게 남아있다. 무심코 찍어본 셀카를 보며 정말 내가 회사를 다니며 삭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주중에 했다. 살이 빠지는 이유가 딴 데 있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40대 초반은 갈림길에 있다. 이뤄놓은 곳에 대해 만족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하나둘 이혼한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것이 모래성 같았다 생각한다. 호기롭게 집을 샀지만 근래 집값이 빠진 친구들은 요즘 두문불출한다. 겁나 많이 나가는 원리금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맞벌이지만 아이들 학원비 내느라 빡빡한 친구들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낀다. 집값도 오르고 주식도 오르고 애들도 잘 크고 부부 사이도 이상 없지만 '나보다 두 살 어린놈이 연봉 20억 받고 M사로 이직했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프다.



DSC_5504.jpg 베네치아 이태리 2015

나 같은 독거도 막막하다. 강남에서 PB를 10년 하면서 부와 명예를 이룬 고객들은 아들뻘인 나를 데리고 다니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에서 밥을 사주고 다니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영업이면 내가 사야 하는데 반대다.) 그중 하나는 "Y 대리 결혼하지 마. 뭘 그걸 하려고 해?"였다. 이틀 전에는 결혼한 지 반년이 되어 아직 혼인신고도 안 한 모 계약직 과장이 초면에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Y 대리님, 결혼하지 마십시오."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떠나서 결혼을 말리는 부류가 내 주변은 반반이다. 생각보다 높다.


도시를 사는 서민들의 고민 중 70%는 돈에서 문제가 나온다. 하지만 그다음은 결혼 생활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결혼생활이 주는 이익이 분명 있지만 버거워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지금 결혼 만족해?'라고 물으면 다들 머뭇거린다.


이렇게 '결혼 반대세력(?)들이 주변에 있으니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흔 총각은 마음이 갈대 같다. 다들 저렇게 고군분투하는 전장에 있는데 나도 꼭 가야 하는 건가...


DSC_8515.jpg 그라나다 스페인 2017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사람은 결혼을 해야 한다. 혼자 살면 옹고집스러워진다. 부부끼리 24시간 치고받고 살면서 상대방의 영역을 끊임없이 인지하면서 살면(좋게 말하면 배려) 그나마 덜 옹고집스러워진다. 물론 기혼 중에도 옹고집은 많으나 그나마 부부로 사니까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람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는 않다. '쟤는 왜 혼자래?'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휴먼 네트워킹이 가장 강력하고 정보가 빠른 여의도에 있다 보면 아마 나도 모르게 내 소문이 도는지도 모른다. (돈+정보+욕망= 여의도 네트워킹)




이제 이 정도 나이가 되니 애를 낳아서 새로 시작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진다. 아니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은데 무슨 육아야? 게다가 결혼하면서 용돈 3~50만 원 받고 사는 친구들이 꼭 저가 커피숍 스탬프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그렇게 많이 싸운다는데 정말 저거 해야 하나? 남녀는 결혼 전후가 달라진다는데... 여자는 갑자기 나 직장 그만두고 애만 볼래!라고 선포하고 남자는 연애 때의 스윗함은 싹 사라지고 아재가 되어 웃기지도 않은 한심한 개그나 운전석에 앉아서 내뱉고 있다. 눈은 지나가는 여자 다리나 쳐다보면서. 이런 불편한 동거를 굳이 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돌싱으로 돌아와 잠시 한국에 들린 여사친은 '난 연애만 할 거야. 결혼은 아닌 것 같아. 내가 힘들게 일하면서 살아도 구속받긴 싫어.' 그래, 뉴요커 다운 생각이긴 한데 그런 이혼녀들이 생각보다 많긴 하다. 남자들도 이혼 후에 피해의식을 느끼지만 좀 더 감성적인 여자들은 인생의 한 번의 실패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DSC_9543(1).jpg 카디즈 스페인 2017


이도 저도 아니고 고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별거 중인 사람들이다. 이혼의 전 단계다. 근래 들어서는 상대방의 바람기 때문에 많은 것 같은데 경기가 안 좋아지면 결국 실업 같은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별거는 이혼으로 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 끝을 보게 되는 것 같다. 한번 갈라진 사이가 다시 아무는 경우는 동거 가운데서는 흔히 있지만 동거를 넘어 별거가 되면 돌아갈 다리가 끊어진 느낌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나도 간접 경험을 했다. 초딩시절 부모님은 3년간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3년간 보지 못했다.






결혼도 안 한 남자가 결혼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목적 없이 침대에 누워 갤노트에 따박따박 썼더니 이제 좀 일어나야겠다. 잠을 많이 자니 개운한 것은 있다. 항상 같은 하루는 없다고 한다.


f.jpg 어제 청담동


오래된 차와 오래된 술이다. 일 년이 되어간다. 작년 홍콩에서 사 온 술인데 코인으로 벌고 흥청망청 쇼핑할 때 한 병 산거였다. 오늘은 자작이든 뭐든 어서 해치워야겠다.

작가의 이전글독거 투자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