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by 정재혁

현실을 마치 감옥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탈출의 예가 될 수는 있지만 단기적이다. 속세와 완전히 연을 끊고 자연이나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극단적으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현실과 영원한 단절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릴케는 이러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묘사했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은 꽤나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쉽고 간편한 방법을 찾는다. 요즘 사회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방법은 SNS와 게임으로 대표되는 가상공간으로의 도피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을 통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경험한다. 현실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떤 이들은 현실 자아와 전혀 다른 새로운 자아를 형성해 가상공간에서 활동한다. 그런데 이러한 탈출은 진정한 의미의 탈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인이 살고 있는 현실을 여전히 감옥과 같이 느낀다는 점에서, 이는 '유사-탈출'이다. 탈출과 비슷하지만, 결코 탈출이 될 수 없다. 가상공간, 가상현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낸 혹은 만들어낸 불만 해소의 수단이며, 따라서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데 가상에 빠져 이것이 마치 진정한 탈출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SNS나 게임에 과몰입 하는 사람들이다. 나쁘게 말하면 중독자들이다. 이들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둘을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시뮬라크르'이 노예들이다. 게임 캐릭터에 빠져 자기 아이를 굶어 죽을 때까지 방치한 젊은 20대 부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탈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감옥의 죄수가 된 것에 다름 아니다. 본인 스스로는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을 통해 현실 감옥에서 탈출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실상 그는 다른 감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우리는 모두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다. 탈출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다. 자살에 대해 릴케가 진정으로 용기 있는 행위라 말한 이유는, 그만큼 현실로부터의 탈출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자살할 수 없고, 그렇다고 속세와 연을 끊을 수도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나마 최대한의 자유를 즐겨보려는 자세뿐이다. 가상공간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진정한 탈출을 기대하는 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행동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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