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병제 도입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 ‘군 복무 기간 단축’과 같은 공약이 젊은 남성들에게 잘 먹혀들었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몹쓸 ‘학습효과’다. 포퓰리즘 공약은 당장의 표를 의식하기 때문에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다.
출산율이 이토록 급격하게 떨어질 줄 알았다면 그런 공약을 쉽사리 내놓을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지금 나오는 모병제 주장은 근시안을 넘어 아예 눈을 감고 있다. 인구 감소라는 눈앞의 현실조차도 바라보지 않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경필 경기지사는 모병제를 통한 병력 감축이 인구 감소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군대가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적정 병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인구 감소는 병력 감소를 의미하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줄어든 병력을 충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상식적이다.
또한 인구가 줄어 병력이 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를 대비한답시고 기존 병력을 줄이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모병제 찬성 측이 주장하는 군 전문성을 제고는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손실에 대한 대책이지 모병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모병제는 새로운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부유층 자제들은 합법적으로 병역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이다. 군대의 이미지가 ‘가난한 집 자식들만 가는 곳’으로 변하게 되면, 과연 군인들에게 투철한 직업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모병제가 비교적 잘 정착된 배경에는 군인을 비롯해 'MIU(Men in Uniform)', 즉 제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대중적인 존경심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존경심은커녕 멸시와 홀대만 가득하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과 북한이라는 외부 환경을 감안하면, 모병제는 우리 사회에 시기상조라고 보는 편이 맞다.
우리 사회에 모병제보다 시급한 것은 국방의 의무를 보다 가치 있는 일로 격상시키는 일이다. 나의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일은 그 자체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이러한 의무를 ‘쓸모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명예로운 일이면서 동시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현이었다. 잘 나가던 로마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사회지도층인 귀족 계층이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 했을 때부터다. 모병제를 주장하기 전에 로마제국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