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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혼밥

by 정재혁

밥을 먹는다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동물들과 공유하는 욕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물들은 먹이를 사냥해 섭취함에 있어 '혼자' 먹는다거나 아니면 '같이' 먹는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사냥을 함께 하기에 식사도 같이 하는 것이고, 혼자 사냥하는 동물은 그래서 혼자 먹는다. 어미가 새끼를 위해 먹이를 공유하는 건 예외다.


인간 사회에서 밥을 먹는 것은 기본 욕구를 넘어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음식 그 자체가 요리법에 따라 예술작품처럼 취급되기도 하고, 밥을 먹는 방식에 있어서도 각 문화권마다 독특한 양식을 갖기도 한다. 국가마다 다른 건 당연하고, 같은 국가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음식 문화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식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럿이 함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다만, 개인주의가 발달된 서양은 혼자 먹는 것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반면, 공동체주의가 강한 동양은 같이 어울려 식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혼밥'의 유행은 문화적 소산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동물적 기본 욕구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생존의 측면에서는 다른 이에게 먹이를 빼앗길 가능성이 적은 혼밥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흔할 정도로 각박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혼밥의 유행은 단순히 문화적인 성격을 넘어서는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이 이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이를 피하기 위해 혼밥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중심 사회에서 혼자라는 것은 부정적이고 심하게는 금기시되는 면이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그럼에도 혼밥이나 '혼술' 등이 유행하는 것은 공동체주의의 스트레스가 혼자의 부정적 의미를 넘어선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요즘 사회에서는 혼자가 긍정되고, 또 추천할 만한 행동 양식이 되고 있다. 혼자 먹는 것에서 발전해 혼자 사는 것이나 '비혼'이 긍정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독을 즐기지 않는 것은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혼자 있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대다수의 생각에 대한 역발상이다. 현대사회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과도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 살기 불편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 보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남과 비교만 하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혼밥은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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