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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Nov 11. 2022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고른다는 건

내가 바라는 삶을 먼저 살아본다는 뜻입니다

9월에는 내년 다이어리를 구매합니다


9월이 되면 아날로그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의 하루는 더욱 바빠진다. 내년에 사용할 다이어리를 지금부터 천천히 모아 둬야 하기 때문이다. 거리에 캐럴이 흘러나오고, 나무들이 온통 노랗고 빨간빛으로 물들 때가 되어 고민을 시작하면 늦다.


다이어리의 수량은 이미 정해져 있고, 신기하게도 기록을 남기는 이들의 취향은 엇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선 남들보다 한 발자국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는 옛 속담은 미라클 모닝보다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기록가들의 모습을 조금 더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아날로그 기록에 빠져 살고 있는 나 역시도 9월이 되고서 내년 다이어리를 정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한 해 동안 기록을 남기며 얼추 윤곽을 잡아두기는 했지만, 돈을 쓰기 전에 이것저것 고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취향 때문이다. 기록을 시작한 이후에 취향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구매한 물건들이 내 취향이 되고 그것이 끝내 내 인생을 이룬다는 건 내겐 꽤나 무서운 일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볼펜 하나를 구매할 때도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아졌다. 그러니 다이어리 구매는 오죽할까.


다이어리를 고른다는 말의 의미


내년 다이어리를 고른다는 건, 기록이 쌓여갈 노트를 구매한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종이에 적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위 문장에는 아날로그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과거 또는 현재의 경험,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 담겨 있다. 거짓말 같기도 하겠지만 정말이다.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말한다.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번 2022년은 기록의 위대함과 무서움을 동시에 깨닫게 된 한 해였다. 무심코 적은 것들이 내 사고를 제한하고, 삶의 전환을 가져오고,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감히 가능케 하였으니 말이다.



내년에 사용할 다이어리를 고른다는 건, 내 기록이 담길 신성한 장소를 직접 선택한다는 뜻이다. 내 생각과 목표를 적으면 언젠가 현실이 되고야 마는 무서운 선언서를 내 손으로 직접 정한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내년에 사용할 다이어리를 고르며 내가 바라는 삶을 미리 그려보고, 그것을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로 이끌어 오고야 말겠다는 엄숙한 다짐을 한다. 그러니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것에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을 수밖에.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한 2023년 다이어리


고심 끝에 2023년 다이어리를 모두 구매했다. 이번 한 해의 기록에 비하면 과분할 정도로 많은 다이어리를 손에 쥐었다. 굳이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로 대변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2022년의 깨달음이 담긴 결정이다.



2022년은 나 스스로가 지닌 한계를 겸허히 바라보았던 한 해였다. 내년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이번에도 나는 이 짧은 문장에 기대 보기로 했다. 그렇게 기대해 보기로 했다.


종이 위에 적으면 반드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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