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공백을 파고든 거대한 시장
2018년 코딩 교육이 의무화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사교육 시장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공교육의 준비 부족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만나면서, 코딩 사교육은 순식간에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코딩 교육은 본래의 교육적 목적을 잃고 또 하나의 입시 도구로 변질되어 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대비 2017년까지 코딩 과목을 개설한 학원이 8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논술 학원의 8.3% 증가, 컨설팅 학원의 26.4% 증가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였다. 단 2년 만에 코딩 사교육 시장이 얼마나 급격하게 팽창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다.
한국정보교육학회가 2022년 2-3월 초등학생 학부모 2,7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6.5%(1,848명)가 SW사교육을 시킨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 3명 중 2명이 코딩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영어나 수학 사교육 참여율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코딩이 이미 주요 사교육 과목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사교육 시장의 성장은 비단 양적인 측면에만 그치지 않았다. 과거 컴퓨터 학원에서 단순히 오피스 프로그램이나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던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전문적인 알고리즘과 자료구조, 심지어 대학 수준의 컴퓨터 과학 이론까지 다루는 고급 과정들이 등장했다. 월 수강료도 30만 원을 넘나드는 고가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여기에 각종 대회 준비반과 특별 캠프까지 더해지면 한 달에 50만 원 이상을 코딩 교육에 투자하는 가정들도 적지 않게 되었다.
코딩 교육이 급속히 사교육화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 왜곡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코딩 교육의 원래 목표였지만, 사교육 시장에서는 빠르게 '스펙 쌓기'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특히 2018년부터 소프트웨어 중점 대학에 소프트웨어 특기자 전형이 신설되어서 대회실적을 기재할 수 있게 되었으면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한국정보올림피아드는 공과계열 학생들에게 대학 특기자전형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고, 전국 수상경력이 있다면, 내신이 좀 낮아도 높은 학교를 갈 수 있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는 사교육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정보올림피아드 금상', '창의융합 대회 1등', '앱 개발 경진대회 수상' 같은 화려한 성과를 앞세워 마케팅하는 학원들이 늘어났다. 코딩 교육의 가치를 대회 수상과 입시 성과로만 평가하는 풍토가 확산되면서, 학생들은 코딩 자체를 즐기며 탐구할 시간도 없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코딩 사교육의 또 다른 특징은 대상 연령이 급속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5-6학년에 코딩 교육이 의무화되자, 사교육 시장에서는 "남들보다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논리로 유아 대상 코딩 교육까지 등장했다. 2016년 3월 구글이 자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기면서 학부모들의 어린이 코딩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분석처럼, 사회적 이슈가 코딩 교육 열풍을 더욱 부채질했다.
'코딩놀자' 같은 유아 대상 코딩 교육 프랜차이즈가 등장했고, 블록 코딩부터 로봇 프로그래밍까지 다양한 교구를 활용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이런 조기 교육이 아이들의 발달 단계나 흥미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코딩을 자연스럽게 탐구하고 즐길 기회를 갖기도 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성인 대상 코딩 교육에서도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늦깎이 개발자' 성공담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단기간의 강도 높은 교육으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부트캠프식 접근법이 인기를 끌었다. "3개월 만에 개발자 되기", "6개월 과정으로 네이버 입사" 같은 자극적인 광고 문구들이 온라인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이런 속성 교육의 한계는 명확했다.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문법이나 간단한 프로젝트 제작 정도였고, 실제 현업에서 요구되는 깊이 있는 사고력이나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은 쉽게 기를 수 없었다. 더욱이 협업 능력, 소통 기술, 지속적인 학습 능력 같은 소프트 스킬은 더더욱 단기간에 갖춰지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부트캠프를 수료하고도 실제 개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업무부터 시작해야 하는 현실에 실망하는 사례들이 늘어났다. 이는 개인의 좌절일 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교육과 멘토링에 추가적인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으로 이어졌다.
코딩 사교육의 급성장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바로 지역 간 교육 격차의 심화였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에는 최고 수준의 강사진과 최신 교육 시설을 갖춘 프리미엄 코딩 학원들이 집중되었다. 이들 학원에서는 정보올림피아드 출신 강사들이나 현업 개발자들을 초빙해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했다.
반면 지방이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기본적인 코딩 교육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강사를 구하기도 어렵고, 설사 학원이 있더라도 서울의 학원들과는 교육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공교육에서 해결되지 못한 지역 간 격차가 사교육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결과를 낳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학생학원 교육비는 24만 2600원으로 하위 20% 가구(5925원)의 27배에 달했다. 또한, 시도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서울이 39만 원으로 가장 많고, 전남이 15만 7천 원으로 가장 적어 지역 간 빈부 격차 역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교육 격차는 코딩 교육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코딩 사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경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코딩에 관심 있는 소수의 학생들만 참여하던 정보올림피아드나 각종 프로그래밍 대회가, 이제는 입시를 위해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필수 코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정보올림피아드는 초·중·고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래밍 대회로, 수학적, 논리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대회에서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확하고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능력을 겨루는 대회였지만, 이제는 대학 입시의 중요한 전형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보올림피아드 준비를 위한 전문 학원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정보올림피아드와 입시(특기자 전형 등)를 연결하여 마케팅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회 준비에 매진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코딩의 즐거움보다는 문제 풀이 기술과 시험 대비 전략을 익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특히 2017년도 지역대회에서는 중등부 문제와 고등부 문제가 분리됨에 따라 고등부 난이도가 상승해 고등부에서는 역대급 헬게이트가 펼쳐졌다는 기록처럼, 대회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사교육의 강도도 덩달아 세졌다.
코딩 사교육 확산의 핵심 동력 중 하나는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였다.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과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맞물리면서, 코딩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코딩 교육의 질에 대한 신뢰 부족이 이런 불안을 더욱 키웠다. 교사의 전문성 부족, 낡은 교육 시설, 부실한 교육과정 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되면서, 학부모들은 공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더욱이 주변 학부모들 사이에서 코딩 사교육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누구네 아이가 어떤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불안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이런 심리적 압박 속에서 많은 부모들이 객관적인 필요성이나 아이의 적성과 상관없이 코딩 사교육을 선택하게 되었다.
코딩 교육 시장의 급성장은 필연적으로 상업화를 가속화했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업체들이 늘어났고, 과장된 광고와 마케팅이 횡행했다. "아이가 미래의 빌 게이츠가 될 수 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식의 자극적인 문구들이 학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겼다.
일부 업체들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 개발이나 강사 양성에 투자하기보다는, 화려한 시설과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높은 수강료를 지불하고도 기대에 못 미치는 교육을 받게 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또한 프랜차이즈 형태의 코딩 학원들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지역별 편차와 품질 관리의 문제도 대두되었다. 본사에서 제공하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각 지역의 특성이나 학생들의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모든 변화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코딩 교육의 진정한 가치가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본래 코딩 교육이 추구했던 창의적 사고, 논리적 분석, 협력적 문제 해결 같은 핵심 역량들이 단순한 시험 대비 기술로 축소되었다.
학생들은 코딩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즐거움이나, 복잡한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해 가는 성취감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기계적인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이는 코딩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더욱이 사교육을 통해 앞서 나간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공교육 현장에서는 수준별 지도의 어려움도 커졌다. 어떤 학생은 이미 고급 알고리즘을 알고 있는 반면, 어떤 학생은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교육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코딩 사교육 시장의 급성장은 여러 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특징을 보였다. 우선 시장의 급속한 팽창에 비해 질 높은 강사 확보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실력과 교육 능력을 모두 갖춘 전문가는 한정되어 있었고, 급하게 충원된 강사들 중에는 충분한 교육 경험이나 검증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또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교육 내용과 방법론이 계속 변화해야 했지만, 사교육 업계가 이런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기술이나 도구들이 이미 구식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사교육 기관들은 지속적인 교육과정 개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코딩 사교육이 입시 위주로 발전하면서, 실제 사회에서 필요한 역량과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기술과 실무에서 요구되는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이는 장기적으로 교육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결국 코딩 사교육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들 - 과도한 경쟁, 사교육 의존, 입시 중심 사고 - 이 새로운 영역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에 불과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코딩 교육이 또 하나의 사교육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 인용 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2017): 코딩 학원 800% 증가
통계청: 소득계층별 사교육비 격차 27배
나무위키: 정보올림피아드 특기자 전형 신설
한국경제TV (2017.05.19): 어린이 코딩학원 프랜차이즈 '코딩놀자' 론칭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