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시스템
정책은 빨랐지만 현장은 달랐다. 2015년 교육부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 정책을 발표하고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을 때, 교육 현장에는 일종의 패닉이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새로운 교육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교사들, 예산과 인프라가 부족한 학교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교육 관리자들. 한국 교육계는 코딩 교육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사였다. 전국의 초중고 교사 중에서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워본 사람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의 교사들에게 코딩은 완전히 낯선 영역이었을 것이다. 컴퓨터를 다루는 것과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워드프로세서를 능숙하게 다루고 인터넷 검색에 익숙한 교사라 해도, 변수와 함수, 반복문과 조건문의 개념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교사 연수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하지만 연수의 질과 양은 현실적 요구에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연수가 15시간 내외의 단기 과정이었고, 그마저도 이론 중심이거나 간단한 블록 코딩 체험에 그쳤다. 몇 시간의 연수로는 프로그래밍의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연수를 받은 후에도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학생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부족했다.
연수 강사진의 문제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연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충분한 검증 없이 강사들이 투입되었다. 일부는 현업 개발자였지만 교육 경험이 부족했고, 일부는 교육 전문가였지만 프로그래밍 실력이 부족했다. 이론과 실무, 기술과 교육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그 결과 연수를 받은 교사들 사이에서도 실력 편차가 극심했고, 같은 연수를 받았다고 해도 실제 수업 역량은 천차만별이다.
학교 인프라의 문제도 심각했다. 코딩 교육에는 컴퓨터가 필수인데, 많은 학교의 컴퓨터실은 10년 이상 된 구형 장비들로 채워져 있었다. 느린 속도, 자주 발생하는 오류, 부족한 메모리로 인해 최신 개발 도구를 제대로 실행하기도 어렵다. 일부 학교는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도입했지만, 대부분은 예산 부족으로 기존 설비를 그대로 사용해야 했다. 소프트웨어 문제도 있다. 학교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했고, 보안 정책 때문에 새로운 소프트웨어 설치에 제약이 많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혼란이었다. 교육부는 '컴퓨팅 사고력 함양'이라는 큰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했다. 스크래치 같은 블록 코딩을 할 것인지, 파이썬 같은 텍스트 코딩을 할 것인지, 아니면 언플러그드 활동 중심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질과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교재와 교구의 문제도 컸다. 급하게 만들어진 교과서들은 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너무 이론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피상적이었고, 실제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제와 활동이 부족했다. 교구 시장도 혼란스러웠다. 다양한 로봇 키트와 보드게임,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쏟아져 나왔지만, 어떤 것이 실제로 교육 효과가 있는지, 어떤 연령대에 적합한지에 대한 검증은 부족했다. 학교들은 업체의 마케팅에 의존해 교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비싼 교구를 사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 간, 학교 간 격차도 심각했다. 서울의 강남 지역 사립학교들은 빠르게 최신 장비를 도입하고 전문 강사를 초빙해 수준 높은 코딩 교육을 제공했다. 반면 농어촌의 작은 학교들은 기본적인 컴퓨터 장비조차 부족했고, 코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같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도 받는 교육의 질이 크게 달라졌다. 이는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새로운 요인이 되었다.
교사들의 부담도 컸다. 이미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교사들에게 새로운 과목이 추가된 것이었다. 코딩 교육을 위해서는 기존보다 훨씬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수업 계획을 세우고, 교구를 준비하며,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에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추가 시간이나 인력 지원은 충분하지 않았다. 많은 교사들이 개인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고 준비해야 했고, 이는 교사들의 스트레스와 부담을 가중시켰다.
학생들의 반응도 예상과 달랐다. 처음에는 새로운 수업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특히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프로그래밍이 상당한 도전이었다. 개인차도 컸다. 일부 학생은 빠르게 이해하고 더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반면, 일부는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해 수업에서 소외되었다. 교사들은 이런 수준 차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어려웠을 것이다.
평가의 문제도 있었다. 코딩 교육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였다. 단순히 프로그램이 작동하는지만 확인할 것인지, 아니면 사고 과정이나 창의성도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더욱이 컴퓨팅 사고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그 결과 학교마다 다른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졌고,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학부모들의 불안도 가중되었다.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코딩 교육의 질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교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 결과 많은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공교육의 코딩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보완하려고 했다. 이는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학교와 교사들은 경험을 쌓고 노하우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과 지식이 체계적으로 공유되고 확산되는 시스템은 부족했다. 각자도생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비효율이 계속되었다. 성공 사례는 있었지만, 그것을 일반화하고 확산시키는 메커니즘이 부족했다.
결국 코딩 교육의 의무화는 교육 현장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왔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정책이었지만, 현장의 준비 부족과 체계적이지 못한 추진 과정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교사들은 부담을 느꼈고,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했으며, 학부모들은 불안해했다. 그리고 이런 공교육의 한계는 사교육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험은 교육 정책의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의 준비와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급속한 변화보다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교사의 전문성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진정한 의미의 코딩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다.
주요 인용 출처
한경닷컴(2018.12.20): 초등교사 10명 중 7명 "연수 미비" 내년부터 코딩 교육 의무화인데… 초등교사 10명 중 7명 연수 미비
ZDNet Korea(2018.03.28): 교원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시수가 문제 "SW교육 의무화, 시수 부족이 더 큰 문제"
뉴시스(2022.08.27): 교사들, 전문성 확보 우려 "초·중 코딩교육 공감하지만"… 교사들, 전문성 확보 우려
경향신문(2022.08.23): 교원확보 대책은 있나 [사설] 초·중등 코딩 교육 의무화, 교원확보 대책은 있나
국내 사회문제 DB: 지역 간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 지역 간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 문제 : 국내 사회문제 DB - 통계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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