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여정.
새로운 사업 방향이 정해지자 본격적인 기획에 돌입했다. 한정판 패키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매일이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다. 어떤 굿즈를 넣을지, 어떻게 고급스럽게 구성할지 고민하다 보니 '고급화'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해야 했다. 일반 제품과 차별화된 고급스러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보다 고려할 것이 산더미였다. 메인 굿즈는 물론, 상표 태그 하나에도 제조원과 판매원, 원산지 정보를 빼곡히 넣어야 했고, 친환경을 위해 비닐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포장을 구현해야 했다. 작품 설명 카드에 실링왁스 도장을 찍을지, 엠보싱 처리를 할지 같은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결정해야 했다.
처음 구상은 꽤 마음에 들었다. 편백 큐브 몇 개를 린넨 주머니에 넣어 향을 입히고, 작은 향수병에 담긴 10ml 향수를 함께 구성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편백 큐브와 린넨 주머니, 리필 향수를 주문해 1차 패키지를 만들어보니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실링왁스와 한지 포장, 벌집 포장재까지 더하니 고급스러움이 한층 살아났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무지에서 오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좌절은 향수에서 시작됐다. 향수를 판매하려면 화장품법에 따라 제조업과 판매업 신고를 해야 하고, 자가검사 확인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허가받은 업체와 계약하지 않는 이상 판매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인을 통해 향수업체를 알아보긴 했지만, 정해둔 출시일에 맞추기엔 역부족이었다.
향수를 포기하고 방향제 주머니와 편백 큐브로 방향을 틀었다. 포장할 때만 편백 향을 뿌려서 납품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벽에 부딪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강화된 법규 때문에 포장을 열었을 때 어떤 향도 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방향제도 포기하고 향후 전문업체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미뤄두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에스프레소 머그잔이나 유리잔, 찻잔을 검토했다. 하지만 역시나 식품 관련 제품은 식품안전검사를 받아야 했고, 수입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도 당장은 무리였다.
도매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다. 판촉물 사이트들은 대량 구매 시 저렴하고 인쇄 서비스도 제공했지만,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유리컵 전문 도매는 도매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비쌌다. 결국 판촉물 사이트에서 구매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또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판촉물로 구매한 제품은 소매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선물용이라 판매 행위 자체가 제한된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B2B 전용 도매몰은 사업자 인증이 필요했고, 가입 후 문의해도 답변은 2-3일씩 걸렸다. 카톡 문의도 하루 이상 기다려야 했다.
이런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며 깨달았다. 상품 하나를 기획하고 판매하기까지 넘어야 할 법적 허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향수는 화장품법, 식기는 식품안전법, 판촉물은 판매 제한까지, 모든 제품마다 각기 다른 규제의 벽이 존재했다. 게다가 국내 재고가 부족해 중국 수입을 알아봐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수입 절차 역시 만만치 않았다.
상품 기획을 너무 가볍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스토어나 개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과정을 해내고 있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중에는 마케팅, 스마트스토어 운영, 쇼핑몰 제작에 관한 책은 많지만, 정작 상품 기획부터 판매까지의 전체 여정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실질적인 허들을 다룬 책은 찾기 어렵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은 직접 부딪혀가며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