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준비

산 너머 산 너머 산.

by jeromeNa

상품 구성을 몇 번에 걸쳐 바꿨다. 그날 구성을 결정하면 다음 날 생각이 바뀌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개발 프로젝트에서 오픈 전까지 기획이 끝없이 바뀌는 것처럼, 생각날 때마다 구성이 달라졌다. 이 상품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제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아이디어가 바뀌다가는 출시 자체를 못 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시작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를 지어야 했다. 여기까지.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다. 하지만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완벽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항상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안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아쉬움을 해결하려고 계속 추가하고 빼고 수정하다 보면 초기 컨셉에서 점점 멀어진다. 옷을 고를 때 여러 벌을 입어보다가 결국 처음 골랐던 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처럼, 초기 컨셉을 기본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계속 바뀌던 구성을 처음으로 되돌렸다. 그동안 추가하고 바꾼 것들이 군더더기로 보였다.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다. 초기 컨셉을 다시 펼쳐놓고, 그동안 떠올랐던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검토하며 재조합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덜어냈다. 흔들리던 구성이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중심이 잡혔다.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 가끔 원점으로 돌아가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오히려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확정된 구성으로 샘플을 만들고 포장 방법을 고민했다. 포장에도 2, 3일이 걸렸다. 단순히 택배 박스에 상품을 넣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넣으면 성의 없어 보였다. 튼튼한 박스에 상품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해야 했다. 맞춤 박스를 주문하면 깔끔하게 해결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소량 제작이라 단가가 높았다. 일반 박스를 쓰되 완충재와 갱지로 칸막이를 만들어 상품을 고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상품을 넣었다 빼고, 칸막이 위치를 바꾸고, 완충재 두께를 조정하고. 박스를 흔들어봤다. 상품이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했다. 택배를 뜯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상품이 흐트러져 있으면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로 도착해야 했다.


포장에도 시간이 든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동안 택배를 받으면 무심하게 뜯어서 버렸다. 포장은 그저 재활용 쓰레기 정도로만 여겼다. 직접 포장하려니 신경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박스 선택부터 시작해서 완충재 배치, 상품 고정, 테이프 붙이는 위치까지. '고급화'가 컨셉이었기에 상품보다 포장에 더 공을 들여야 했다.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포장을 열었을 때의 경험이 상품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는 걸 체감했다.




포장을 끝내고 온라인에 올릴 사진을 준비했다. 이것도 기획, 구성, 포장 못지않게 까다로웠다. 아니, 어쩌면 더 어려웠다. 상품 개별 촬영은 어떻게 할지, 컨셉 촬영은 어떤 분위기로 갈지, 전체 구성 촬영은 어떤 앵글로 찍을지, 촬영 장소는 어디가 좋을지, 날씨는 흐린 날이 나을지 맑은 날이 나을지, 암막 스튜디오는 언제 사용할지. 생각할 게 끝없이 나왔다. 또 다른 산이었다.


촬영 계획을 세웠다. 실내 촬영과 야외 촬영을 나눴다. 실내는 조명을 컨트롤할 수 있어서 상품 디테일 촬영에 적합했다. 야외는 자연광을 활용해 분위기 있는 컨셉 촬영을 하기로 했다. 야외 촬영은 대부분 카페에서 진행했다. 창가 자리가 필요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공간이어야 했다.


주말은 카페가 붐비니까 평일 한가한 시간을 택했다.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 (평일 오후 경기도 외곽 카페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인지, 프리랜서들인지, 생각보다 자리가 없었다.) 3일에 걸쳐 카페를 옮겨 다니며 촬영했다. 한 카페에서 오래 있기도 미안하고, 다양한 배경이 필요하기도 했다.


촬영하고 저녁에 사진을 골랐다. 선별 작업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몇백 장을 일일이 확인하며 추렸다. 비슷해 보이는 사진들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찾아야 했다. 조명, 각도, 구도, 초점. 작은 차이가 결과물의 퀄리티를 좌우했다. 밤늦게까지 사진을 보다 보면 눈이 피로해졌다. 그래도 타협할 수 없었다. 온라인에서는 사진이 전부다.




구성, 포장, 촬영. 처음 가는 길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산 하나를 넘으면 더 큰 산이 나타나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준비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장 라인 시스템을 짜야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어떤 순서로 처리할지 정해야 했다. 효율적인 동선이 필요했다. 주문 확인, 출력, 박스에 구성품 담기, 재확인, 송장 출력 후 부착까지. 단계별로 실수가 없어야 했다. 특히 주문자와 상품이 뒤바뀌면 큰 문제가 된다.


주문 정보와 구성품 내역을 라벨지로 출력해 박스에 붙이기로 했다. 라벨지만 봐도 어떤 구성품을 넣을지 한눈에 알 수 있게. 이렇게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가상으로 주문이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해봤다.


포장 후 송장 스티커와 라벨지의 주문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주문이 몇 건 안 되면 괜찮겠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면 얘기가 다르다. 실수 없이 빠르게 처리하려면 시스템이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 복잡하면 헷갈린다. 피로하면 실수한다. 또 산이었다.


라인을 여러 번 수정했다. 불필요한 단계를 제거하고, 확인 포인트를 명확히 했다. 작업대 배치도 바꿔봤다. 동선을 최소화해야 했다. 상품, 포장재, 라벨 프린터, 송장 프린터. 손이 닿는 위치에 배치했다. 작은 차이가 누적되면 큰 차이가 된다.




상품 하나 준비하는 과정이 이렇게 험난할 줄 몰랐다. 막연히 상품만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상품 자체는 시작일 뿐이었다. 구성, 포장, 촬영, 시스템. 하나하나가 독립된 프로젝트였다. 쇼핑몰 운영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끝난 게 아니다. 저 멀리 더 험준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고객 응대(CS), 재고 관리, 마케팅이라는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