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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이 시스템이 되고, 시스템이 길이 된다

창작자로 살아가는 방식

by jeromeNa

처음 코드를 짜던 날들을 떠올려봅니다. 에디터에 적힌 몇 줄의 명령어들, 폴더에 흩어져 있던 소스 파일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파편처럼 존재했습니다. 어떤 파일이 최신 버전인지, 어떤 수정사항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파일명 끝에 붙인 숫자들 - final, final2, final3 - 이런 이름들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고, 날짜별로 분류한 폴더 또한 혼란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그러다 버전 관리 시스템인 SVN(Subversion)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SVN은 단순히 코드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었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망이었으며, 무엇보다 작업의 모든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지도였습니다. - 지금은 더 체계화된 GIT을 사용합니다. -


이런 경험은 코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작가의 서랍 속에 쌓인 원고 뭉치, 화가의 작업실 한편에 포개진 스케치북들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흩어진 조각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물방울이 강을 이루듯


기록이 단순히 순간을 붙잡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일정한 체계를 갖추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작은 흔적들이 충분히 모여 하나의 패턴을 드러낼 때, 기록은 비로소 시스템으로 변모합니다.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개울을 만들고,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며, 그 강이 결국 바다로 흘러가는 시스템이 됩니다.


밤하늘의 별들도 처음에는 그저 흩어진 점들이지만, 그것들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만들어내듯, 개발자의 코드 로그, 작가의 일기, 화가의 스케치북은 처음에는 단편적인 기록이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의미 있는 체계로 발전합니다.


시스템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는 것도, 떠오른 아이디어를 특정 수첩에 적는 것도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작고 일관된 습관들이 모여 단단한 체계를 만들어냅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포스트잇에, 스마트폰 메모에, 때로는 냅킨 위에도 적었던 생각들이 점차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주기적으로 다시 읽는 습관이 생기면, 어느새 자신만의 작업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반복, 정리, 그리고 성찰의 순환


기록이 시스템이 되는 과정에는 몇 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반복입니다. 하루 한 줄의 코드라도, 하루 한 문장의 일기라도, 하루 한 장의 드로잉이라도 꾸준히 반복될 때 의미 있는 패턴이 생겨납니다. 이 반복은 창작의 리듬을 만들고 습관의 힘을 키워줍니다. 매일 커밋을 남기는 개발자처럼, 매일 한 페이지씩 글을 쓰고, 매일 한 장씩 스케치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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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의 반 이상을 개발자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글과 창작자, 후배 양성으로 살아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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