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너머 아름다움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여인들>, 1918-1919

by jeromeNa
1540px-Pierre-Auguste_Renoir_125.jpg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여인들>, 1918-1919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붓을 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지 못한다. 손가락이 굽어 있다. 마디마다 염주알처럼 굵어진 관절. 오른손 엄지는 오리 목처럼 휘었다. 류마티스 관절염. 20년째 진행 중이다.


가정부 가브리엘이 다가온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붓을 조심스럽게 끼운다. 나사못처럼 굽은 손가락 틈에. 피부가 쓸려 벗겨지지 않도록 손에 붕대를 감는다.


준비가 끝난 르누아르가 캔버스를 본다. 두 여인이 물가에 있다. 누드다. 햇빛이 살결을 붉게 물들인다.

붓이 짧고 빠르게 움직인다. 예전처럼 정교하지 않다.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빨강, 노랑, 분홍. 색이 캔버스를 채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년 태생. 1892년경, 쉰한 살에 관절염이 찾아왔다. 처음엔 손이 붓는 정도였다.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1897년, 자전거 사고로 오른팔이 부러졌다. 두 번째 골절이었다. 그 뒤로 악화됐다. 1909년부터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었다. 1912년부터 휠체어를 탔다.


손가락은 점점 더 굽어져 붓을 쥘 수 없게 됐다. 화가에게 붓을 쥘 수 없다는 것. 생명이 끝난 것과 같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1907년, 남프랑스 카뉴쉬르메르로 이주했다. 따뜻한 기후를 찾아서. "레 콜레트"라는 농장. 유리로 된 아틀리에를 지었다. 햇빛이 하루 종일 들어왔다.


매일 아침 휠체어를 타고 아틀리에로 나갔다. 흰 모자를 쓰고 가브리엘이 붓을 손에 꽂아줬다. 통증이 몰려오면 얼굴을 찌푸렸다. 의자 뒤로 기대고, 잠시 침대에 누웠지만 곧 일어나 다시 붓을 들었다.


무엇을 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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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오직 여인. 누드. 햇빛 아래 목욕하는 여인. 풍경 속에 누워 있는 여인. 장미를 든 여인.


르누아르는 말했다. "신이 여성을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화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그렸다. 5천여 점의 작품 중 2천여 점이 여성 인물화였다.


왜 여인이었을까.


그에게 여인은 아름다움이었다. 기쁨이었다. 삶 자체였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아름다움을 찾았다. 비극을 그리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말했다. "그림은 기쁨과 아름다움이 넘쳐야 하는 것. 비극은 누군가가 그리고 나는 밝은 것을 그리겠다." 그리고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


손은 굽어갔지만 그림은 밝아졌다. 색은 더 강렬해졌다. 빨강이 캔버스를 지배했다. 붓질은 거칠어졌지만 생명력은 더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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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장미꽃을 꽂은 금발 여인>, <목욕하는 여인들>, 위키백과

1915년, 화가 마티스가 모델을 소개했다. 데데. 르누아르의 마지막 뮤즈. 그는 데데를 그렸다. <장미꽃을 꽂은 금발 여인>. <목욕하는 여인들>


<목욕하는 여인들>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 160 x 110cm.


두 여인이 물가에 앉아 있다. 풍만한 몸. 붉은 살결. 햇빛이 피부를 감싼다. 나무와 풀과 물이 뒤섞인다. 형태가 흐릿하다. 색만 남았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생명의 색들.


상단의 여인은 거의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렸다.




1919년 여름, 르누아르는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다. 자신의 그림이 옛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걸려 있는 것을 봤다. 평생의 꿈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그림을 봤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1919년 12월 3일. 카뉴쉬르메르. 일흔여덟 살. 폐렴으로 사망했다.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The pain passes, but the beauty remains.)


20년간 관절염과 싸웠다. 손가락이 굽고 걸을 수 없었다. 붓을 쥘 수 없었지만 그렸다. 매일. 아름다움을. 기쁨을. 밝은 것을.


르누아르의 그림 앞에 서면 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햇빛과 여인과 장미와 웃음뿐이다. 그가 선택한 것이다. 비극을 그리지 않겠다고. 영혼을 씻어주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았다.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전 세계에.


지금도 르누아르의 여인들은 햇빛 아래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