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관계의 얕아짐

연결보다 관계다.

by jeromeNa

휴대폰 연락처를 열어보았다. 500명이 넘는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 전 직장 동료, 세미나에서 만난 사람, 이름만 보면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 스크롤을 내리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500명. 그중에서 지금 당장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일까.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한 손이면 충분했다.


연결은 늘었는데 관계는 줄었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가까운 사람은 적다. 이상한 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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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연결의 도구로 탄생했다.


멀리 있는 친구와 소식을 나누고, 오래전 인연을 다시 찾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팔로워 수가 늘고, 친구 목록이 길어지고, 네트워크가 확장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 연결의 질은 어떨까.


타임라인에 누군가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좋아요를 누른다. 가끔 댓글을 단다. "축하해!" "멋지다!" "오랜만이야!" 짧은 반응들이 오간다. 서로의 일상을 보고 있으니 안부를 묻지 않아도 근황을 안다. 알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게시물에 올라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일부다. 여행 사진, 맛집 후기, 작은 성취의 기록. 올리지 않은 것들(고민, 불안, 지루한 일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서로를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잘 지내?'라는 안부가 있다.


예전에는 이 질문 뒤에 대화가 이어졌다. 뭐 하고 지내는지, 요즘 무슨 고민이 있는지, 밥이나 한번 먹자는 이야기까지. 안부는 대화의 시작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메시지로 "잘 지내?"가 오면 "응, 잘 지내. 너는?"이라고 답한다. "나도 잘 지내"가 돌아오면 대화가 끝난다. 이모티콘 하나가 마침표를 찍는다. 안부가 대화의 전부가 되었다.


가끔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서도 긴 답을 기대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바쁘니까. 긴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으니까. 상대방도 그걸 아니까 짧게 답한다. 서로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의 영역에 깊이 들어가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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