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껍데기와 대화하지 않으려면

이야기를 만나는 것

by jeromeNa

큰아이 요청으로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난 천주교 신자였고, 지금은 무교다.)

예배가 끝난 후 누군가의 강제에 이끌려 아저씨들만 있는 테이블에 앉혀졌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어떤 일 하세요?"

"IT 쪽이요."

"아."


몇 가지 정보 탐색 후 대화가 멈췄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아저씨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잠시 하고, 서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몇 분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오늘 거기에서 대화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보는 교환했다. 직업, 사는 곳, 대략적인 근황. 하지만 그 모임 사람들을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 껍데기만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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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란 무엇일까.


사람의 표면이다. 외모, 직업, 학력, 말투, 첫인상. 처음 만났을 때 보이는 것들. 프로필에 적을 수 있는 것들. 금방 파악되는 것들.


껍데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껍데기는 필요하다. 우리는 껍데기로 세상과 접촉한다. 모든 사람에게 속을 보여줄 수는 없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껍데기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문제는 껍데기에서 멈출 때 생긴다.

껍데기만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할 때.

껍데기와 대화하면서 사람과 대화한다고 착각할 때.




우리는 점점 껍데기와 대화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프로필을 본다. 사진 몇 장, 짧은 소개, 몇 가지 정보. 그것으로 상대방을 판단한다. 마음에 들면 연결하고, 아니면 넘긴다. 껍데기를 보고 결정한다.


오프라인에서도 비슷해졌다. 만남의 시간이 짧아졌다. 네트워킹 행사에서 명함을 교환하고, 몇 마디 나누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간다. 깊이 들어갈 시간이 없다. 표면만 훑고 지나간다.


효율적이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만남들은 껍데기와 껍데기의 접촉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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