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준다는 것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요즘 일은 잘돼?" 목소리에 뭔가 말하실려는 갈망이 담겨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물을 틀어둔 채로 스피커 폰으로 받았다. "뭐, 그렇죠. 무슨 일 없으시죠?" 대답하면서 접시를 헹궜다.
어머니가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 이제 곧 봄인데, 또 밭일을 생각하니 힘들다는 이야기. 나는 "응", "그러시구나", "그러게요."를 적당히 섞어가며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손을 닦았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 내가 끼어들었다. 조언을 하려고 했다. 어머니가 말을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그래."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나는 방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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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것은 듣기가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음성으로 수신하는 것, 그것은 듣기의 시작일 뿐이다.
진짜 듣기는 다르다.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 말 속에 담긴 감정을 느끼는 것. 말하지 않은 것까지 헤아리려 하는 것.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설거지를 하면서 듣는 것은 진짜 듣기가 아니다. "응, 그러네요"를 반복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진짜 듣기가 아니다.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언을 준비하는 것은 진짜 듣기가 아니다.
우리는 듣는 척을 많이 한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내가 할 말을 생각한다.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곧 꺼낼 준비를 한다. "아,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말할 타이밍을 노린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할 기회를 기다린다.
조언을 주려고 서두른다. 상대방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어진다. "그럴 땐 이렇게 해봐." "내 생각엔 말이야." 도움을 주려는 좋은 의도다. 하지만 그 순간 듣기는 끝난다. 상대방의 자리에서 내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판단하면서 듣는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속으로 평가한다. '저건 좀 오버인데.' '왜 저렇게 생각하지.'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 판단이 시작되면 이해는 멈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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