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판단은 관계를 닫는다.
새 프로젝트에서 만난 동료가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답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속도를 올리고 있는데, 그는 아직 기초적인 것들을 물어보는 단계였다. 코드 리뷰를 하면 수정 사항이 많았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슬그머니 눈치를 봐야 할 때도 있었다. '일이 느린 사람이구나.'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후로 나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가 달라지고 있었다. 질문의 결이 달라졌고, 코드에서 군더더기가 줄었다. 처음에 느리다고 생각했던 그 속도가, 사실 구조를 파악하며 걷는 속도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프로젝트 후반부, 그는 어느새 팀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본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작 지점이었다. '느린 사람'이라는 판단은 틀렸다. 하지만 이미 몇 달을 그 판단 안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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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빠르게 판단한다.
처음 만난 몇 초 안에 첫인상이 형성된다. 외모, 표정, 말투, 옷차림. 그 단서들을 조합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추론한다. 친절한 사람인지, 차가운 사람인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조심해야 할 사람인지.
이것은 생존에 필요한 능력이었다.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위험한가, 안전한가. 적인가, 아군인가. 판단이 늦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빠른 판단은 우리 뇌에 새겨진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이 현대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직장 동료는 적이 아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나를 해치려는 것도 아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판단한다.
판단은 한번 내려지면 바꾸기 어렵다.
심리학에서 '확증 편향'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일단 어떤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믿음을 확인해 주는 정보만 눈에 들어온다.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한다.
'저 사람은 차갑다'고 판단하면, 이후의 모든 행동이 그 프레임으로 해석된다. 조용히 있으면 '역시 차갑군.' 웃으면 '그래도 기본적으로 차가운 사람이지.' 친절하게 굴면 '뭘 원하는 거지?' 어떤 행동을 해도 첫 판단이 흔들리지 않는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첫인상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찍힌 낙인은 오래간다. 그래서 첫 판단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첫 판단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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