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비효율의 가치

by jeromeNa

회사에서 신입 직원 교육을 맡은 적이 있다.


매뉴얼이 있었다. 업무 프로세스, 시스템 사용법, 주의사항. 잘 정리되어 있었다. 효율적으로 하자면 매뉴얼을 주고 읽게 한 뒤, 모르는 것만 질문받으면 된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했다. 옆에 앉아서 하나씩 같이 해봤다. 중간중간 이야기를 나눴다. 왜 이 일을 이렇게 하는지, 예전에 어떤 실수들이 있었는지, 내가 처음 왔을 때 어땠는지. 반나절이면 끝날 교육이 며칠로 늘어났다.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 신입 직원과 나는 가까워졌다. 그 뒤로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편하게 물어왔다. 매뉴얼에 없는 것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었다. 그 '비효율'이 관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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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은 이 시대의 미덕이다.


최소 시간에 최대 결과를. 낭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자. 빠르게 처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효율은 좋은 것이고, 비효율은 나쁜 것이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공식이다.


업무에서 효율은 필수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과정은 줄이고, 자동화할 수 있는 것은 자동화하고,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 효율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효율의 논리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때 문제가 생긴다. 관계에도 효율을 적용하려 할 때.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도 빠름을 추구할 때.




효율적으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프로필을 본다. 몇 가지 정보로 상대방을 파악한다. 어떤 유형인지 분류한다. 빠르게 판단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앞의 장들에서 계속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파악한 것은 껍데기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맥락은 생략된다. 속사정은 알 수 없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시간이 걸린다. 여러 번 만나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봐야 한다. 긴 대화를 나눠야 한다. 판단을 유보하고 기다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효율을 추구하면 이해는 얕아진다. 깊이 이해하려면 효율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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