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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혁 Aug 03. 2023

경계 혼란

성숙한 사람을 알아보기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행복의 필수 요소입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혼자 남겨지기를 싫어하는 마음은 사람의 본성이고 또 포유류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는 어떻게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시작은 당연히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일 겁니다. 오늘 여기서 저는 그 방법에 대해 정신의학의 입장에서 하나씩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설명이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보면서 각자 경험하신 것에 비추어보면서 차분히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미성숙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로 정신과에서 성격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개념으로 “자기(self)와 대상(object)의 경계혼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혼란이라니? 얼핏 봐서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요. 그렇다면 심리적으로는 어떨까요?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인 갓난아이 때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가 갓난아이라고 상상하고 아기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봅시다.


아기가 갓 태어나고 나서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상상할 수 있을까요? 엄마의 뱃속에서 배고픔 없이 지내던 나날은 이제 끝났습니다. 모든 욕구가 자연스럽게 충족되는 비현실적인 공간인 엄마의 자궁을 떠나서 아기는 처음으로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자지 않으면 짜증이 나는 물질세계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기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화를 내고 울면 맛있는 모유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울면 모유가 생긴다. 아기는 이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게 될까요?


”어머니가 육아로 힘든 중에도 고맙게도 나를 먹이기 위해서 모유를 준비해 줬구나.”라고 생각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마도 “내가 울고 화냄으로써 모유가 생겨났다. “라고 생각했을 거라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기가 뭔가를 원할 때마다 보호자들은 마법처럼 알아채고 그것을 갖다 줍니다. 그렇다면 아기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전지전능(omnipotent)하다. 나 이외의 세상은 모두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보호자들을 포함한 모든 세상은 나를 위해 기능(function)으로 존재하는 나에게 종속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서 나는 모든 세상을 충분히 착취(exploit)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심리적인 경계는 모호합니다.


물론,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과정은 아이의 발달과 자존감의 형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너무 빠르게 불필요한 진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을 알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의 쾌락을 위한 상상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비위만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이는 적절한 때가 되면 엄마가 바쁘면 밥을 늦게 먹을 수고 있고, 아빠가 사주기 싫으면 원하는 장난감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욕구를 절제하는 방법 역시 배워갑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경계는 점점 확실해지고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욕구와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그 경계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몸만 어른이 되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그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들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났다는 사실이 옆집 아저씨에게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직장동료한테는 어떨까요? 서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조금은 눈치를 봐야겠지만 그래도 거의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먼 친척에게는 어떨까요?


그러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느낌을 견디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기능으로 작동하지 않는 대상(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분노를 느낍니다. 나에게 종속된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하지요.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신입사원의 생활은 너무 고됩니다. 업무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눈치 볼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여러 선배나 상사들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잘못을 짚어내어 지적하기도 합니다. 트집 잡는 것으로도 느껴집니다. 월급도 예상했던 만큼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대학시절에 예상했던 직장생활과는 너무 다릅니다. 처지를 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혼식장에서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하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서 내 신입사원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 동창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 사람의 성숙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아마도 “너는 그래도 대기업에 입사해서 일하고 있고 미래도 밝으면서 진짜 암울하게 느껴지는 나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 일반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운한 것을 넘어서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극심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일종의 나와 대상의 경계 혼란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다른 사람도 내가 억울한 것을 알아주지 않을 수 있는 독립적 존재입니다.


물론, 너무 경계가 분명한 것도 다른 정신병리와 연관이 있을 수는 있으며,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 (예; 엄마, 아내 등)에는 어느 정도 경계 혼란이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그 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사회에 조금씩 적응을 해갑니다. 어떤 행동을 하면 나에게 좋고, 어떤 행동을 하면 나에게 나쁜지를 알면서 조금씩 행동 방법을 정해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그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경계가 혼란하고 자기중심적인 분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종속된 우주를 살아갑니다. 천문학으로 따지자면 지동설의 우주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동설의 우주에서 보면 다른 행성들의 경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화성의 경로를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의 우주에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모호한 개념만을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먼저 화를 내야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얕은 공감이라도 공감하는 척을 최대한 해줘야 나를 좋아하겠구나.”라는 것일 수도 있고요,


물론 나의 관점에서는 꼭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실제 대인관계는 훨씬 복잡합니다. 상사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무작정화를 내는 부하직원은 언젠가 큰 코를 다칠 수도 있고, 얕은 공감만 가지고는 진실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습니다.


이런 분과 연애하거나 결혼하게 되면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할 수 있으실까요? 아마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넌 공감 능력이 너무 떨어져.” 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나의 공감능력일까요. 너의 경계혼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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