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를 극장에서 상당히 늦게 보게되었다. 훌륭한 영화이지만 상당히 착찹한 마음이 들게하는, 안타까운 한 인물의 입체적인 초상을 그려준다고 할까? 정말 좋은 영화였고, 아래에서는 영화에 대한 약한 스포가 있을 예정이라서 영화를 볼 계획이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는게 좋겠다.
주인공 키쿠오의 경우, 아버지가 일찍 죽고, 영화 상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설정이 있다. 단순히 불행한 배경이 아니라 애초에 안정된 애착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성장한 인물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 때, 아이들이 선택하는 전략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약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강함에 집착하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려는 것이다. 키쿠오 역시 성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인물처럼 보인다. 씩씩한 겉모습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불안감이 있었을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어린 나이에 야쿠자 문신을 새기고, 권총으로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들 역시 강함에 집착하는 심리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그래서 키쿠오의 ‘절대 지지 않으려는 마음’, ‘최고여야만 하는 집착’은 단순히 야망이라기보다 붕괴를 막기 위한 자기 방어 구조에 가깝다. 말 그대로 나르시시즘에 매달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인생이다. 딸 아야노와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악마와 거래를 해서라도 최고가 되고싶다는 말은 섬뜩할 정도다.
하루에와의 관계를 볼까, 나이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왠지 연상처럼 보이는 하루에는 기댈 곳 없는 키쿠오를 엄마처럼 돌봐주는 여성이다. 그런데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하루에가 갑자기 키쿠오를 버리고 떠나는 과정은 의아하게 느껴지는데, 뒤로 갈수록 대략 짐작이 간다. 키쿠오의 세계에는 자기 자신과 가부키밖에 없다. 하루에가 아무리 품어도 그 거대한 나르시시즘을 이길 수는 없다. 키쿠오에게는 상처였겠지만 하루에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키쿠오의 재능은 그에게는 양날의 칼인데, 한편으로는 자존감을 지탱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의 질시를 불러온다.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가부키 세계에서 배경 없는 인물이 압도적으로 빛나는 모습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주연에서 밀려나고 스캔들로 추락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장면은 역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스승의 부상으로 대역이 필요한 상황에서 스승의 아들이자 가문의 후계자, 라이벌이나 친구 슌스케가 주목받게 되는데, 그 때 키쿠오의 표정을 살펴보게 된다. 부럽고 미우면서도 감히 드러낼 수 없는 어색한 축하. 그 순간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키쿠오야, 기대하지 마, 기대하면 너만 상처받을거야. 아무도 네가 주인공이 되길 원하진 않아. 차라리 슌스케의 조연의 자리에 만족하는 편이 덜 아플 거야. 하지만 그의 재능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딸 아야노를 무시하고, 스캔들 이후 여자를 버리고, 목적을 위해 다른 여자를 유혹하는 선택들이 이어지며 키쿠오라는 인간이 선명해진다. 그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느꼈겠지만, 그것이 슌스케에게 비난으로 돌아오자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다. 너희가 먼저 그렇게 비겁하게 나를 매장시키려고 했지 않느냐는 생각은 말하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결국 키쿠오는 그 많은 질시를 딛고 일어나, 예술의 극점에 도달해 인간국보가 된다. 그의 혼이 담긴 무대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그는 정말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전대 인간국보 만키쿠 역시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예술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결국 씁쓸함을 남긴다.
P.S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는 키쿠오와 맞서는 도련님 슌스케의 몸부림, 영화의 미장센도 볼만한 지점이다. 디테일이 완벽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