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경험한 것은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다.
정말 취약한 순간에 울면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외면 받은 경험? 없던 일로 돌아가기 힘들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사람들 앞에서 냉정하게 버림받았던 순간? 기억나지 않아도 대인관계 방식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약한 순간에 버려졌던 경험은 한 번으로도 신경계를 바꾼다.
우리의 뇌는 논리보다 경험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충격적이거나 반복적인 정서 경험은 편도체–해마–전전두엽 회로를 통해 신경계에 깊게 각인된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은 머리로는 '이 사람은 다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위험을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둔다. 이미 신경계가 학습�했기 때문이다.
"의지를 가지고 극복해 보세요."
그럴듯하지만, 생각보다 공허한 말일 수 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입스(yips)’라는 현상이 있다.
실패 경험이 신경계에 각인되어, 의지와 상관없이 동작이 자동으로 망가지는 현상이다.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당연히 알지만, 몸이 공포 반응을 일으켜서 야구 선수는 평범한 송구를 갑자기 못 던지고, 골퍼는 간단한 퍼팅에서 손이 경직된다.
의식적으로는 '괜찮아, 별일 아니야.�'라고 되뇌지만 몸은 “위험해! 얼어붙어!�” 반응한다. 이 선수들이 의지가 부족해서 그럴까? 누구보다 극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마 자기자신일 거다. 다만 뇌에 새겨진 경험의 흔적은 생각보다 쉽게 지워지지 않을 뿐이다.
당신의 그런 어려움들도 사실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상이고,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신중히 골라야 한다. 굳이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남길 일을 선택할 필요는 없고, 아무 관계나 감당할 이유도 없다.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환경에 굳이 몸을 던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 경험은 의지와 상관없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반론이 있다.
그렇다면, 위험은 모두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경험을 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삶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든다. 피했더니 불안이 줄어드는 경험이 다시 학습�되어 신경계에 각인된다. 회피는 점점 확장되고 사람을 피하고 관계를 피하다 다시 삶 자체가 축소된다.
아, 그러면 어쩌란 말이야?
회피도 하지 말고, 모험도 하지 말라니?
사실은, 둘 다 정답이다.
굳이 상처받을 환경에 자신을 내던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두려움이 모든 선택을 대신하게 두어서도 안 된다. 경험을 신중히 고르되, 그 선택이 삶을 좁히는 회피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원래 우리 삶의 하루하루가 모든 것이 경험이고 학습이고, 신경계에 남아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고, 균형을 중요하게 봐야 된다. �
p.s
그렇지만 누가봐도 위험한 일이라면 당연히 신중하게 선택하는게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