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들은 미래를 그리지 못할까

by 열혈정신과

진료실에서는 특히 첫 진료일 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들이, 청사진들이 치료의 에너지가 되고 연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 그런 건 없는데요?”라는 대답을 가끔 듣게된다. 치료자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한 순간이 아닐 수가 없다. 연료가 없으면 치료 동기가 생기기 어렵다. 이런 분들일수록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치료자가 알아서 잘 치료하기를 원하고, 치료자는 막막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목표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을 수 있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지켜다보다보니 실제로 정말 아무런 미래상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건 의지 부족 때문은 아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 것 같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느끼지 못한다. 지금 기분이 화가 난 건지, 설레는 건지, 부끄러운 건지조차 잘 모른다. 현재가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경험이 아니라 흐릿한 흑백 화면처럼 느껴진다면, 미래 역시 회색 공간으로만 떠오를 수밖에 없다. 느껴지는 감정이 없는데 기대나 바람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기대가 계속 꺾여온 사람들도 있다.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했고, 무언가를 바라면 실망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면 ‘상상해봤자 소용없다’는 학습이 된다. 미래를 그려보는 행위 자체가 다시 상처받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대를 줄이고, 아예 바라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울과 무기력의 영향도 크다. 우울한 호르몬 상태에서는 즐거움이 올 것이라는 예측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 잘 돼도 별로 기쁘지 않을 것 같고, 무엇을 이뤄도 공허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동기가 사라지고 목표를 세울 연료도 바닥난다. 하고 싶다는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이럴 때 치료자가 할 일은 거창한 인생 목표를 만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해 보인다. 보통은, 정말로 손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작은 청사진을 함께 그려보는 것이 그래도 해결책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기르고 있는 강아지와 공원 한 바퀴 산책하기, 친한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계획해보기, 사랑하는 아들의 졸업식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기 이런 것들이다.


작고 구체적인 미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서서히 진짜 목표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 과정이 치료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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