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하지 않는 우울증

by 열혈정신과

요즘 외래에서 자주 만나는 젊은 우울증의 모습은 예전에 우리가 떠올리던 장면과는 조금 다르다. 울고, 괴롭고, 힘들다고 절규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이들은 비교적 조용하고, 겉으로 보기엔 크게 무너지지 않은 상태로 진료실에 앉아 있다.


좀 늦게자긴 하지만 잠은 그럭저럭 잔다고 하고, 식욕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의욕이 없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즐거운 것도 딱히 없다. 삶이 엄청난 고통은 아니지만, 잘 굴러간다는 느낌도 없다.


대인관계도 애매하다. 부모, 친구, 가족과의 관계가 나쁜 건 아니다. 큰 갈등도 없고 무난하다. 그렇다고 자기 힘든 이야기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란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어차피 말해봐야 해결은 안되잖아요. 그냥 혼자 버티는 게 익숙해진 상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다. 이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이미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건 보통 먹는 것들이다. 맛있는 음식, 특히 매운 음식이 그나마 활력소라고 말한다. 그 외에는 커뮤니티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틀어두거나, 유튜브를 보다 하루가 지나간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식에 가깝다.


죽을 용기는 없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굳이 왜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만약 사고가 나서 죽게 된다면, 그냥 그러려니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죽으려는 건 아니지만, 삶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는 상태다.


대인관계에서는 거절에 유난히 민감하다. 상처받기 싫어서 불편한 감정을 참고, 혼자 견딘다. 그러다 감정이 쌓이면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거나, 어느 순간 감정이 터져버린다. 그 결과 더욱 고립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상황에 들어가는 일은 가능한 피한다. 이런 상태가 적어도 3년, 4년 이상 이어져 왔다고 한다.


이 유형의 공통점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본인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느끼지 않으려 애써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자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것 같으면 피해버린다. 느껴지더라도 표현하지 않고 눌러둔다. 정서 회피와 정서 억제, 그리고 경험회피가 기본값이 되었다.


감정을 다루지 못하니 삶의 추진력도 함께 사라진다. 즐거움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의욕은 점점 고갈된다. 무쾌감과 무기력이 만성화되면서 하루를 버티는 것 자체가 일이 된다. 어디에도 속해 있다는 느낌이 없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태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활력이 넘친다 말하기도 어렵다. 물과 영양분이 있다면 버티지만 스스로 어딘가로 가지는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사람은 원래 선할까, 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