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서사가 치료를 멈추게 할 때

by 열혈정신과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그 끔찍한 경험은 말해지고, 제대로 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트라우마 환자들은 그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를 피한다. 말로 꺼내는 순간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질 것 같고, 다시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힌 채 남아 있게 된다. 안전하고 공감적인 환경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질 때, 그동안 외면받아 왔던 감정들은 비로소 주목받고 수용되며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단지 과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흩어져 있던 자기 자신을 다시 하나로 묶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피해자 서사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가 현재의 어려움을 고정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 사건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인과관계가 지금의 고통을 설명해주는 방식이 될 때, 그 인과관계에 매달리는 일이 오히려 지금 당장 느끼는 분노, 슬픔, 우울감, 나는 약한 사람이라는 무력감 같은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 구조가, 정작 현재의 감정과 마주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방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한정해서 볼 때, 치료자가 수용하고 촉진해야 할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내담자의 속마음 속감정, 그러니까 마음속에 느껴지는 그 분노, 슬픔, 우울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나는 그저 약한 사람이었다는 무력감까지도 당연하고 정상적이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타당화하고, 오히려 더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와야하는 방향일까?


아니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고 지금의 어려움은 모두 과거의 경험들 때문이라는, 방어기제로써의 피해자 서사를 더 강화하고 지지해주는 쪽으로 가야하는 걸까?


트라우마는 들어져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더 큰 원칙은 우리가 수용해야 할 것은 고통을 설명하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상은 그 아래에 있는 살아 있는 정서다. 피해자 서사가 진짜 감정과 경험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때는 치유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감정을 가리고 붙잡아 두는 틀이 될 때는 오히려 회복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치료자가 이때 이 서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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