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 때문에 힘들다고 부모에게 어렵게 털어놓았을 때, 이런 말을 들어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 정도는 다 겪는 일이야."
"선생님도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겠지."
"그 친구 입장도 생각해봐."
"네가 좀 예민한 것 같아."
용기 내어 꺼낸 이야기에 돌아온 것이 이해가 아니라 설명이었습니다.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에게서 감정 대신 상황을 이해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이는 내가 느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지 내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배우게 됩니다.
감정을 인정받지 못한 채 넘어가야 했던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고 이후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건 바로, '과잉반응'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장난꾸러기 친구에게 밀쳐졌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바로 대응해야 하는 일일까요.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넘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소한 일에도 부모가 오히려 크게 반응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일 수 있습니다. 자녀를 지킬 수만 있다면요.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또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사건이나 작은 갈등까지 심각한 위협으로 해석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모든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어떤 일은 흘려보낼 수 있는 둔감력이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별 것 아닌 일을 별 것 아니라고 알려주는 경험은 오히려 아이를 안심시킬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원칙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했다가 감정이 무시당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마음으로 모든 사건에 과잉반응하면 작은 문제에도 크게 흔들리는 태도를 학습하게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 말이 모두 맞기 때문에 보통은 한 쪽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존재하는 감정은 그건 '이미' 있는 겁니다. 그건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무섭고 위협적인 곳은 아니라는 경험 역시 필요합니다.
아이가 실제로 불안하거나 상처받은 상태라면,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이걸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을 없다고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거 신경쓰지 마" 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감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가 먼저 사건을 크게 해석하고 피해자라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역시 없습니다. 부모가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는 태도가 아이를 오히려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갈등이 심각한 위협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둔감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균형은 자녀의 감정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대응 방법을 정하기에 앞서 자녀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가족 안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미 조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이 알아차려지고 무시되지 않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자녀의 감정은 받아들여주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못하게 하고
(엄마도 바쁘고 힘드니까 그건 지금 얘기하지마.)
부모의 애정표현은 주로 물질적으로만 이어지고
(널 위해서 학원비를 우리가 얼마나 쓰고있는데. 엄마아빠 너 때문에 고생하는거 안 보이니?)
하지만 사소한 피해는 과대해석해서 예민함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면
(선생님, 우리 애한테 지금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른거에요? 그것도 폭력이에요.)
이건 모두 원칙에서 정 반대의 방향일 수도 있어보입니다.
부모님들의 의도와는 달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