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해상도 확대하기

by 열혈정신과

“선생님은 무슨 재미로 사세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이런 말이 따라옵니다. “저는 사람들이 다들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어요.”


맛집이나 가면 맛있긴 합니다. 호캉스에 가면 좋기는 하죠. 하지만 비싸고 자주 갈 수는 없습니다. 압도적인 영화나 공연도 가끔은 만나지만 늘 그런 건 아닙니다. 많지 않죠.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그렇게 자주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요.


이 질문을 들으면 먼저 의학적인 가능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속적인 무쾌감은 우울증의 핵심 증상일 수 있습니다. 기질적으로 보상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낮은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도파민 체계가 둔감해져 있다면 웬만한 자극으로는 즐거움이 잘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럴 땐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점검한 뒤라면 또 다른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강한 자극을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비싼 식당, 여행, 큰 이벤트, 압도적인 예술. 그러나 그런 자극은 원래 드뭅니다. 그리고 뇌는 금방 적응합니다. 강도가 큰 즐거움에만 의존하면 삶의 대부분은 심심하고 회색빛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차이는 자극의 크기가 아니라 지각의 해상도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커피를 그냥 쓴 물로 마시는 사람과 산미와 향, 바디감과 끝맛의 잔향을 구분하는 사람은 같은 한 잔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합니다. 쓰고 맛 없는 한 잔에서 향과 산미가 남다른 커피로 달라지는 거죠. 와인이나 위스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부분이 그렇지만 세밀하게 느끼려는 노력할 수록 그 안에서 작은 우주가 열립니다.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냥 출근길이라고 묶어버리면 그저 회색의 배경일 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나눠 보면 장면이 늘어납니다.


맑은 날 하늘의 파란색과 초록 나무의 대비,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 아들 또래 아이들이 친구들과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아무 의미 없던 풍경이 갑자기 질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즐거움은 항상 큰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평하던 하루가 미세한 굴곡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재미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확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특별히 기분 좋은 일로 가득 차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즐거운 일상과 아무 의미없는 회색 빛의 일상의 차이는 그 평평함을 그대로 지나치느냐, 아니면 그 안에서 미세한 색과 결을 발견하느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렬한 천국은 자주 오지 않지만, 오감을 더 세밀하게 열어두고 해상도를 늘려가면 작은 천국은 의외로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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