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고 해도 괜찮아
이전 직장에서 어렵게 하루의 휴가를 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요즘과 같이 시간제 휴가 제도도 없었거니와 부여된 휴가를 다 쓰지 앉는 것이 아름다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였기에
그것도 신입사원이 큰 사정이 없는 한, 휴가를 쓰는 것이 온당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기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작은 아버지 가족의 이민이라는 나름대로의 큰 사정을 만들어
출국하는 작은 집 가족의 배웅을 가야 하므로 휴가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창작했다.
그리고 그날, 내 기억이 맞다면
오전에 모 방송사의 면접을 보았고, 그러고 나서 아무도 없는 집에 오후 일찍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모처럼 만의 자유 시간에 세상 편하게 시간을 보낼 법도 한데
그 낮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너무 무서운 기분에, 나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한동안 겁에 질려 있었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정체되어 있다는 것.
나 아닌 다른 것들은 모두 빠르게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상하리만큼 무서웠고,
내가 잠깐의 여유로움 마저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을 공포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정적은 내 방 전체를 어둡게 했고, 방 안의 공기는 너무 탁해서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 이상한 병적인 중압감에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 동안 눈물을 글썽였다.
머릿속에서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입사동기 누구는 컴퓨터를 잘하는데 너는 멀 잘해?”
머뭇머뭇거리다가 한참 후에 다는 궁색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 저는 노력을 잘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일종의 강박이나 불안증에 시달렸던 것 같고,
요즘 말로 이미 ‘번아웃’ 상태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이미 직감했다.
그러나 그 일을 그만두기까지 정확히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었고
그런 이유로 고등학교 시절이 내내 우울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결과는 양에 차지 않았다.
입시제도는 자꾸 바뀌었고, 시험방식에 적응하기도 전에 대입을 치러야 했다.
대학에 와서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대학시절도 우울하게 보낼 수 없다는 각오로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장학금을 놓쳐본 적은 없으나
나의 속은 항상 타들어 갔고 허무했다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의 시험을 치를 때마다 이번 한 번만 이다, 한 번만 참자라고 수없이 가슴에 새기며
시험을 치르곤 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하고 나서 모든 것을 보상받은 듯한 착각에 잠깐 빠졌었다.
입사 후 나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곳은 전쟁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목표, 실적, 경쟁, 전략, 성취, 달성, 실패 라는 숨 막히는 단어들이 매일 매시간 반복되었다.
지끔까지 나를 채찍질했던 그 단어들은 더 센 강도로 나를 압박하였다.
물지 않으면 물렸다. 물려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일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일어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영예의 업무들이 전리품처럼 하나둘씩 주어졌다.
거의 매일을 내가 뒤쳐져서는 안 되는 대상들을 떠올리며 잠이 들었고
그들을 생각하며 새벽잠을 깨웠다.
새벽에는 어학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퇴근 후 회사 근처 독서실에서 몰래 공부를 했다.
몸이 고단해 새벽 수업을 놓친 날에는 하루 종일 자괴감에 시달리며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2년의 고단함은 나의 사표와 바꾸었다.
그냥 설렁설렁해도 되었을 것을
나는 항상 그래 왔듯 너무 열심히 했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시절 일에 빠져 일밖에 모르며 살던 직장 선배들은 가정에서는 이혼 위기였고
회사에서는 퇴직의 압력을 받곤 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흥미로운지 몰랐다.
왜 목표를 정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목표를 달성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에 대한 고민도 없던 시절이었다.
일 이외의 다른 인생의 영역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아직 가끔은 나는 십 수년 전 한낮의 여유로운 공포와 마주했던 그날을 기억하곤 한다.
이후에 새로 다니기 시작한 직장에서는 17년 차 선배 직원이 되어 있으며,
그때의 나만한 나이의 후배 직원들이 신입으로 입사하고 있다.
이젠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더 이상 나도, 내 후배들도 자극을 할 수는 없다.
예전 방식의 강요는 “꼰대”라는 화답으로 재빠르게 돌아오곤 한다.
다만 어떤 게 행복이고 어떤 게 삶의 균형인지가 우선이 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나 또한 균형 잡힌 삶은 동경하는 것이 명징하여 이 길을 택하여 왔지만,
일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는 후배 직원의 태도에 대해서 불평을 쏟는 나를 발견할 때면,
내가 이미 처한 환경을 통해서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 게 아닌가라는 반성 또한 하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교시절의 실패가 없었다면, 나의 대학생활이 촘촘히 알차게 채워질 수 있었을까
첫 직장에서의 고뇌와 고단함이 없었다면,
인생의 가치와 삶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이제 나는 낮에 잠깐의 여유에 어느 정도는 행복하게 쉴 수는 있게 되었다.
한낮에 불연 듯 찾아온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지금의 내가, 예전 한낮의 이불속에서 떨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해줄 수 있을까.
괜찮다고.. 너무 빨리 뛰지 않아도..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도.. 설령 뒤쳐진다고 해도..
또 실패라고 해도.. 괜찮다고..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