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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Apr 29. 2016

이승환, 이번에도 타협없는 질주!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가수 이승환이 신곡을 내놓고 한층 폭넓게 활동을 재개했다. 쉴 새 없이 공연을 하고 있었으니 ‘활동 재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신곡 발표와 동시에 쇼케이스에 기자간담회까지 가지고 방송까지 겸하고 있으니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건 맞다. 지난 21일 내놓은 신곡의 제목은 ‘10억 광년의 신호’다. 스케일이 돋보이는 웅장한 편곡과 정교하게 짜인 구성을 가진 완성도 높은 모던 록 넘버다. 그동안 대중성을 가미한 발라드와 이승환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드러내는 데 치중한 마니아 취향의 록 음악을 두루 선보였는데, 이번 곡의 느낌을 말하자면 후자다. 사실 이번 곡에서 대중성을 고려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승환 본인도 “대중성보다 음악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싶다”고 당당하게 의도를 밝혔다. 언제나 고집불통이었지만 이번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직진이다. 




‘10억 광년의 신호’, 음악성-실험성 돋보이는 모던 록

이승환이 발표한 ‘10억 광년의 신호’는 제목만큼이나 어려운 가사와 범상치 않은 편곡으로 구성된 곡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기승전결이 충실하게 짜였으며 도입부의 아련하고 감성적인 멜로디와 강렬한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기타와 드럼 등 록 사운드에 충실하되 오케스트라까지 곁들여 웅장한 느낌을 준다. 가사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으며 제목에서 표현한 것처럼 ‘신호’가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는 심정이 반영됐다. 곡의 기승전결에 맞춰 수차례 바뀌는 창법도 인상적이다.

또한, ‘천일동안’ ‘그대가 그대를’ ‘그대는 모릅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등 대형 스케일의 록 발라드를 히트시켰던 이승환의 노하우가 잘 깃든 곡이기도 하다. 앞서 이승환은 히트곡 외에도 ‘너의 나라’ ‘나의 영웅’ ‘위험한 낙원’ 등 블록버스터급 록 넘버로 자신의 음악성을 알렸다. 이번에 발표한 ‘10억 광년의 신호’는 이 흐름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4집에 ‘너의 나라’를 수록할 당시, 이승환은 이 곡의 모티프를 먼저 만들어두고도 본인의 실력이 받쳐주는 시점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연습을 거듭하고 대중에게 들려줄 만한 실력이 됐다는 판단이 섰을 때 녹음을 진행해 완성도를 높였다. 4집의 빅 히트곡은 ‘천일동안’이었지만, 마니아들은 ‘너의 나라’로 인해 이승환의 음악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알 수 있었다. 콘서트에서도 ‘너의 나라’는 이승환의 음악적 고집을 보여주는 곡으로 쓰였다. 미성과 그로잉, 샤우팅 등 다양한 창법이 고루 쓰이고 파격적인 퍼포먼스까지 곁들여져 관객을 홀리기에 적합했다. 대중성을 배제하고 오직 음악성만 생각하며 작업한 곡이었다. ‘10억 광년의 신호’가 그렇다. 록 발라드나 모던 록뿐 아니라 소위 대형 스케일이 돋보이는 곡을 작업하며 쌓은 노하우가 여기에 집결된 듯하다. 



세월호 사건 떠올리게 만드는 가사 눈길

‘10억 광년의 신호’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그 추운 곳에 혼자 있지 마’라는 가사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정치 이슈에 대해 거리낌 없이 할 말은 하던 뮤지션이라 세월호 사건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이승환이 “그리움의 신호를 보낸다는 의미이고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승환의 신곡을 세월호 사건에 대입해 해석하고 있다. 이에 이승환은 “뮤지션으로서 내가 만든 곡을 듣는 이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느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뜻했던 내용과 다르게 해석되더라도 상관없다. 이 곡에서 세월호 사건을 느끼고 또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며 대인배의 모습을 보였다. 

앞서 JTBC ‘히든싱어’에 출연했다 일반인 모창능력자에게 밀려 탈락했을 때도 이승환은 ‘쿨’했다. 그리고 자신의 곡이 의도와 달리 해석되는데도 여전히 담담하다. 혹은 처음부터 의도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중성과 음악성 두 가지 두고 고민

이승환은 오랫동안 정규앨범 작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공들여 작업한 앨범을 내놓고 그 가치를 평가받고 싶어했던 뮤지션이다. 라이브 음반이나 싱글 음반을 발표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역시 여러 신곡을 포함해 소장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겸했다. 

하지만 음악시장이 싱글 한 곡을 발표하고 단기간에 음원 수익을 노리는 방식으로 변함에 따라 기존에 존중받던 가치의 기준은 훼손됐고, 이 과정에서 이승환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노력과 비용을 쏟아부으며 ‘음악적으로 괜찮다는 평가’를 듣고자 고군분투했는데 막상 대중은 그 결과물을 외면했다. 이승환의 음악이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대중과의 사이도 데면데면해졌다. 미디어 활동이 적으니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약해졌고 항상 성황을 이루던 콘서트의 관객 수도 줄었다.

이쯤 되니 이승환 본인도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래서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소프트한 발라드곡을 내놓거나 음반에 수록된 원곡의 편곡과 창법을 그대로 살려낸 콘서트 ‘오리지날’, 또는 대표적인 발라드 히트 넘버를 모은 ‘온리 발라드’ 등의 공연을 하기도 했다. 데뷔 당시부터 주요 히트곡이 발라드였던 데다 이승환의 발라드를 원하는 팬들이 많다는 사실을 고려한 기획이다. 그러면서도 이승환표 록을 바라는 마니아층을 위해 ‘돌발콘서트’ 등 소규모 공연과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며 본인의 색깔을 지켰다. 두 가지 성격의 음악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선택은 ‘음악적 평가’

그렇다면 ‘전성기를 되찾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 수요층의 폭이 넓은 곡으로 위치를 공고히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승환은 대중성보다 음악적 평가에 욕심을 내고 ‘10억 광년의 신호’를 발표했다. 대개 가수들이 싱글을 내놓을 때 대중적인 취향에 잘 맞는 곡을 내세운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승환이 얼마나 과감한 시도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노릴 수 있는 기회인데도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순간을 이용해 오히려 음악적 색깔을 좀 더 확고히 하는 길을 택했다. 대중성 따위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곡을 들고 나와 “내가 누구?”를 외친다.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중가수로선 굉장한 용기다. 음악에 있어 이승환의 고집과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향후 활동 계획 역시 방송이 아닌 공연 위주다. 7월까지는 거의 매주 무대에 오르고 그 뒤로도 꾸준히 공연장에서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싱글을 내놓을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발표한 곡들을 포함해 내년 봄 완성된 앨범을 들고 나오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이승환은 2014년 ‘폴 투 플라이-전’(Fall To Fly-前)이란 앨범을 내놓고 ‘11집 앨범의 절반 분량이며 향후 나머지 절반을 완성시켜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시 이 앨범이 예상보다 저조한 반응을 얻어 상업적으로 실패하면서 ‘폴 투 플라이-후’ 발매 계획이 흐트러졌다. 이번에 내놓은 ‘10억 광년의 신호’는 ‘폴 투 플라이’의 전편과 후편을 결합해 하나의 앨범으로 완성시키겠다는 이승환의 의지다. 앞서 ‘폴 투 플라이-전’이 참패하면서 이승환은 “후편 제작이 어렵게 됐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마침 지금 후편 제작의 때를 만난 건 사실이지만 침체기가 이어졌다고 해도 결국 이승환은 이 앨범을 완성시켰을 게 분명하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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