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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May 20. 2016

김제동과 유일한 고정방송 '톡투유'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방송인, 예능인, 개그맨, MC, 논객…. 김제동의 이름 앞에 어울릴 법한 수식어들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김제동을 검색할 때 주로 나오는 단어들이다. 김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개그맨이었던 적은 없지만 개그맨처럼 웃길 줄 알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행사 MC로 시작해 한때 안방극장을 ‘장악’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방송인이었던 것도 맞는 말이다. 상당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화려한 입담을 과시하며 방송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석연찮은 이유로 내몰리다시피 고정 방송을 빼앗기고 주춤했지만 그럼에도 김제동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대중에게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JTBC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이 애착 갖고 기획 지시 


요즘 김제동이 ‘잘하는 일’은 관객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토크콘서트’ 무대에 집중돼 있다. ‘토크콘서트’의 방송 버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도 ‘잘하는 일’의 일환이다.이 프로그램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공개 토크쇼 형식을 띤다. 김제동의 유일한 고정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김제동의 방송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우려의 시선을 받으며 시작했지만 올해 5월을 기점으로 1주년을 넘겼다. 김제동이 ‘잘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톡투유’는 현장을 찾아온 청중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김제동이 이를 들어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김제동이 오프라인에서 수년간 지속하고 있는 일종의 브랜드 공연 ‘토크콘서트’를 TV에 걸맞게 재구성한 프로그램. 예능이 아니라 교양 쪽으로 분류되며 JTBC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이 애착을 가지고 기획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MC가 대화를 리드하며 인터뷰이의 말을 끌어내거나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려 노력하는 게 일반적인 토크쇼의 유형이다. 강연 프로그램이라면 강사의 지식과 입담에 무게중심을 둔다. ‘톡투유’는 얼핏 김제동의 강연쇼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는 김제동과 청중 사이에 쌍방향 토크쇼와 같은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 프로그램이 강연쇼나 토크쇼의 특징을 살리되 사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제동식 ‘듣는 방송’ 새로운 형식 눈길

‘톡투유’의 경우 김제동이 청중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때 김제동은 굳이 조언을 해주기 위해 애쓰거나 과도한 리액션으로 억지웃음을 유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제작진은 관객의 말과 이에 반응하는 김제동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아 보여준다. 때로 대화가 잠시 끊어져 정적이 흘러도 이 순간을 살려낸다. ‘3초만 침묵이 이어지면 사고’라고 인식되는 방송계에서 말이 끊어져 서로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편집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지만 막상 ‘톡투유’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달아난다. 대놓고 웃기려고 하진 않지만 순간순간 김제동의 재치가 돋보여 즐거움을 준다. 동반출연한 패널이나 게스트가 전하는 의견, 또 청중의 각기 다른 사연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재미있는 건 타 프로그램에 비해 게스트가 부각되지 못하고 심지어 방송 중간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드러내는데도 섭외가 수월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청중과 직접 대화하고 힐링을 경험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란 인식이 생기면서 스타급 게스트까지 스스로를 낮추고 ‘톡투유’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전국 각 대학교 및 단체를 비롯해 해외에서까지 ‘톡투유’ 공개방송 유치를 위해 제작진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 일요일 밤 11시라는 불리한 시간대에 편성된 데다 자극적인 소재나 폭소 등 MSG가 빠진 차분한 프로그램인데도 평균 3%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순항하고 있다. 



“김제동 왜 쓰냐” 선입견 깨고 승승장구 

‘톡투유’가 기획될 무렵 방송계 전반에는 “왜 굳이 김제동을 쓰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소셜테이너’로 인식되고 있는 김제동의 이미지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앞서 김제동은 사회-정치 이슈 전반에 걸쳐 목소리를 내며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제 사회자로 나섰던 일. 이후로 김제동은 각 방송사의 고정 프로그램을 내려놔야 했다. 외압이 있었거나 방송사 관계자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었던 게 확실하다. 하지만 하차의 이유가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었다. 방송 활동이 뜸해진 이 시기를 즈음해 김제동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까지 공연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토크콘서트’다.소신 뚜렷하고 의식 있는 인물로 부각되면서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방송사 관계자들은 김제동의 이런 이미지가 예능 프로그램에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그 시기부터 김제동은 고정 프로그램 확보에 애를 먹었다. 친한 예능 스타들에 힘입어 인기 프로그램에 간간이 모습을 보인 게 전부다. 그나마 고정으로 출연한 프로그램은 SBS ‘힐링캠프’ 정도였고, 해당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을 때도 한동안 김제동의 활약이 부진해 ‘동반 MC 이경규에게 업혀가는 수준’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2009년에는 MBC 파일럿 프로그램 ‘오 마이 텐트’의 MC로 나서 10%를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정규 편성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MBC 측 고위 관계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듬해 Mnet에서 기획된 ‘김제동쇼’ 역시 녹화까지 한 상태에서 방영이 취소됐다. 



‘톡투유’로 김제동식 소통법 전파

결국, 가는 방송사마다 퇴짜 맞던 김제동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손석희 사장이었고 ‘톡투유’가 김제동식 소통법을 어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그리고 ‘톡투유’는 방송 초반부터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어 부정적인 시선을 불식시켰다. 심지어 이 당시까지 방송되던 ‘힐링캠프’ 측이 ‘톡투유’의 영향을 받아 프로그램 포맷을 김제동과 청중 위주로 바꾸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인기 떨어진 ‘힐링캠프’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포맷 카피’였다. 이 때문에 김제동 역시 두 개 프로그램 사이에서 난감해했던 걸로 전해진다. 결국 ‘힐링캠프’는 바뀐 포맷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개편 후 6개월여 만에 종영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김제동은 유일한 고정 프로그램 ‘톡투유’와 자신의 공연 ‘토크콘서트’ 무대를 오가고 있다.

예능계 트렌드가 바뀌고 새로운 인물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김제동이 웃음을 우선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다시 돌아가는 게 앞으로도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신변잡기와 말장난에 치중하며 웃음을 주는 것보다 들어주고 생각을 나누는 김제동식 소통법으로 어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프라인 공연 ‘토크콘서트’와 공개녹화 프로그램 ‘톡투유’의 객석이 항상 가득 차는 것도 김제동이 전하는 말과 웃음뿐 아니라 그와 대화를 나누고픈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능에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좋았겠지만 지금은 물질 대신 대중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지지층을 확장시키고 있다. 일반적인 엔터테이너의 역량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예능 스타가 아니라고 해도 김제동은 여전히 쓰임새가 많은 인물이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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