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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May 31. 2016

'또 오해영'으로 살펴본 '로코' 성공 요소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는 국내 드라마 중 가장 흔한 장르다. 그 외의 장르에서도 로맨스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으로 불린다. 통계적으로 봐도 극중 로맨스가 시작될 때 몰입도가 높아지고 시청률은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단, 흔한 양념인 만큼 잘못 활용했을 경우 극 전체를 진부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따른다. 특히나 익숙한 맛과 냄새로 가득한 로맨틱 코미디를 요리할 때는 제작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떡볶이만큼이나 뻔한 맛이라 일단 대중을 끌어들이기는 용이하다. 하지만 어지간한 ‘비법’ 없이는 접시 위에 가득 남은 떡볶이를 두고 떠나가는 시청자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을 터. 결국 장르에서 통용되는 클리셰까지 ‘비법화’시키는 재주를 발휘해야 한다. 그만큼 ‘성공작’으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말.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또 오해영’을 중심으로 이 장르의 특징을 살펴봤다. 



‘또 오해영’, 예상 못한 뜨거운 호응

tvN 월화극 ‘또 오해영’은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오해영(전혜빈 분)이란 이름의 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돌연 무산돼 상처받은 남자 박도경(에릭 분)이 시간이 지난 뒤 또 다른 오해영(서현진 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뜬금없이 미래를 투사하는 능력까지 가지게 된 박도경의 감정 흐름, 또 그를 두고 벌어지는 두 오해영의 갈등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된 볼거리다. 한 남자를 가운데 두고 ‘과거의 여자’와 ‘현재의 여자’를 설정하고 여기에 판타지적 요소까지 가미한, 트렌디한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다. 

기획 의도만 살펴보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모습이 부각되는 듯하고 사실 캐스팅을 살펴봐도 특별한 주목거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신화의 에릭이 주인공으로 나섰지만 과거에 비해 인지도가 약하고 솔직히 2010년대로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출연한 드라마 중 히트작이 없어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여주인공에 캐스팅된 배우는 서현진인데, tvN ‘식샤를 합시다2’로 가능성을 보여준 것 외 드라마의 ‘퍼스트 여주인공’으로 나서 성공한 사례가 전무해 역시 주목도가 떨어졌다. 

그런데 본방송 시작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초반부터 기대 이상의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선전하더니 8회에 이르러 9.9%로 10%(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광고제외 기준)에 육박하는 기록을 올렸다. tvN 월화드라마의 흥행 기준을 바꿔놨다는 ‘치즈 인 더 트랩’보다 더 좋은 성적이다. 



단순 로맨틱 코미디에 트렌드 적극 반영 


‘또 오해영’류의 로맨틱 코미디가 성공가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동명이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 남자의 감정, 주된 캐릭터들의 성격과 상황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야만 한다. 자칫 매 신을 재미있게만 꾸미는데 치중하다 보면 시츄에이션 코미디로 빠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16부작 전체를 끌고 가다 힘에 부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오해영’의 경우 주요 인물에 대한 배경설명이 비교적 설득력 있고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강하게 부각된다.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사실 특별할 게 없다.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지는데 이 캐릭터가 어울리는 연기자와 만나 시너지효과를 내니 더할 나위가 없다. 그중에서도 여주인공 오해영 역의 서현진이 발군이다. ‘식샤를 합시다2’에서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의 매력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내며 쐐기를 박고 있다. 단번에 남자들을 매료할 정도로 예쁜 외모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털털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 연기자다. ‘또 오해영’에서 특별히 잘난 데 없이 난관을 만나며 살아가는 현실적인 인물을 표현해 주가를 높이고 있다. 상대역 에릭이 만들어내고 있는 남자주인공 박도경 캐릭터도 꽤나 인상적이다. 최근 트렌드로 자리 잡은 ‘츤데레’(겉으로 퉁명하지만 속은 따뜻한 인물)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옛 사랑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임팩트있게 묘사해 과거 화제작이었던 ‘불새’ 이후 최고의 캐릭터라는 말을 듣고 있다.


‘결혼 이야기’ ‘질투’ 국내 로맨틱 코미디 시초 

로맨스를 다루는 드라마에선 캐릭터만 제대로 구축돼도 ‘절반은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어차피 이 장르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남녀 캐릭터의 갈등은 한정적이다. ‘남녀가 티격태격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난관을 거치다 결국 연결된다’는 고전적 스토리가 기반이 된다. 

이런 전개는 이미 1920년대부터 할리우드가 시도해 고착화됐다. 이후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확산됐고, 맥 라이언이 연기하던 여러 영화 속 인물들은 이 장르의 전형을 제시했다. 

충무로 로맨틱 코미디의 신호탄이 된 영화는 1992년에 발표된 최민수-심혜진 주연영화 ‘결혼 이야기’다. 신혼부부가 이혼 후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재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유쾌한 톤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신파멜로 일색이었던 충무로 로맨스 장르에 로맨틱 코미디의 자리가 커졌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안방극장으로 이어져 로맨틱 코미디 요소가 곁들여진 드라마가 줄줄이 등장하게 된다. 

그 시작점에 있는 작품이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1992년 작 ‘질투’다. 절친한 남녀가 각자 다른 사랑을 찾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하게 된다는 내용. 최수종과 최진실 등 당대 톱스타들이 출연했으며 편의점 데이트와 남녀 간의 우정 등 그 시대 젊은이들의 행동 패턴을 반영해 큰 인기를 끌었다. 청춘로맨스 드라마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어쨌든 ‘질투’가 등장한 이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틀을 제공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교훈을 전달하거나 또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평면적으로 다루던 기존 청춘드라마의 패턴이 ‘질투’의 등장으로 크게 바뀌었다. 


피할 수 없는 클리셰, 활용이 관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로맨틱 코미디 역시 하나의 장르가 된 상태라 기존의 패턴을 탈피해 새로움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다. 어차피 남녀 주인공과 주변인물 등 캐릭터 구성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고 스토리나 에피소드 역시 앞서 성공한 전작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작 중 창의성이 돋보인 로맨틱 코미디가 있었으니 지난해 화제작이 됐던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이나 ‘식샤를 합시다’ 등이다. 호러 및 ‘먹방’ 등 새로운 요소를 가미해 작품 전체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케이스다. MBC의 ‘킬미힐미’도 다중인격이란 소재에 스릴러 장르의 특징을 로맨틱 코미디에 접합해 효과를 봤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클리셰라 불릴만한 요소까지 적극 활용해 정면승부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황정음을 철저히 망가트리고 사랑스러운 여자로 만들어 시선을 집중시킨 ‘그녀는 예뻤다’나 지금 방영 중인 ‘또 오해영’이 대표적인 성공의 예다.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했는데 좀 더 센 캐릭터와 몰입도 높고 탄탄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최근 초반 레이스를 시작한 SBS ‘미녀 공심이’도 비슷한 경우다. 아직 출발단계지만 느낌이 좋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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