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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Jun 03. 2016

'검은 사제들' '곡성'까지, 불어라 오컬트 바람!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영화 '곡성'에서 무당 역을 맡아 굿을 하고 있는 황정민


지난해 ‘검은 사제들’부터 현재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곡성’까지…. 또 JTBC ‘마녀보감’과 tvN ‘뱀파이어 탐정’ 등 오컬트 요소를 곁들인 영화와 드라마가 속속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오컬트란 과학으로 풀어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말한다. 단순하게 말해 호러 장르 안에서 영적인 존재 등을 다룰 경우 오컬트로 분류한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거센 흥행바람을 몰고 왔던 할리우드 영화 ‘악마의 씨’(1968년),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때 호러를 대표하는 세부장르로 꼽혔지만 이후 살인마의 광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슬래셔, 또는 좀비물 등으로 유행이 변하면서 정통 오컬트를 내놓는 경우가 드물었다. 종종 할리우드에서 오컬트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성과는 미비했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 1990년대 이후로는 소위 귀신이 등장하는 한국적 오컬트가 성공을 거둔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한 장면


영화 ‘검은 사제들’ - 사제와 악마의 싸움에 ‘구마의식’ 까지


강동원-김윤석 주연의 영화 ‘검은 사제들’은 할리우드식 오컬트의 전형을 차용해 눈길을 끌었다. 가톨릭 식의 구마의식을 보여주며 사제와 악마의 싸움을 다루는 형식인데, ‘엑소시스트’가 큰 성공을 거둔 후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등 수없이 많은 할리우드 오컬트 영화에서 다뤄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하다. 

할리우드 오컬트 붐을 일으킨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사실 ‘검은 사제들’은 캐릭터나 기본 스토리까지 ‘엑소시스트’를 상당 부분 차용했다. 캐릭터 구성부터 동일하다. 구마의식에 있어 베테랑인 노신부, 그리고 구마의식 자체를 반신반의하다 큰 책임을 안고 가는 젊은 신부, 또 악마에 빙의 된 소녀까지. 악마가 신부의 구마의식을 방해하는 방식이나 이에 동요하는 젊은 신부의 모습 등 기본적인 설정이 거의 같다. 단, 이 부분은 ‘엑소시스트’ 이후 할리우드의 수많은 오컬트 영화들이 마찬가지로 가져다 쓴 부분이므로 아예 ‘기본 공식’으로 봐도 무방하다. 장르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만큼 온전하게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대신 ‘검은 사제들’은 캐릭터에 좀 더 인간미를 부여해 약간의 유머를 보여주고 할리우드의 유사 오컬트에 비해 월등히 빠른 전개로 속도감을 더했다. 악마와의 힘든 싸움에 진지하게 집중하던 할리우드 오컬트의 특징에 블록버스터 액션의 장점을 더해 몰입도를 높였다. 


한국적인 오컬트의 새 장을 열어젖힌 영화 '곡성'의 스틸사진



영화 ‘곡성’ - 천주교와 무속신앙`한국 귀신과 서양의 악마 버무린 기발함


‘곡성’은 크리에이티브 면에서 진일보한 작품이라 놀랍다. 천주교와 무속신앙, 한국의 귀신과 서양의 악마, 심지어 좀비와 미스터리, 또 코미디까지 적절하게 버무려 지금껏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재미를 준다. 

‘검은 사제들’을 비롯해 오컬트를 표방한 영화나 드라마가 기존 유사장르 영화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반면, ‘곡성’은 여러 세부장르의 클리셰를 차용하면서도 기발한 창의력으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반전의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가 많아 하나씩 되짚어보면 문제점으로 지적될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트릭까지 자신만의 패턴이라며 힘 있게 밀어붙이는 연출력 때문에 모든 게 무마된다. 뛰어난 흡입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꽂아두니 엔딩타이틀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숨 돌릴 틈이 없다. 

'곡성'의 무당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황정민


사실 한국영화사에서 오컬트라고 규정할 수 있는 작품은 흔치 않다. 소위 처녀 귀신으로 대표되던 원귀를 등장시킨 ‘월하의 공동묘지’(1967)나 ‘여곡성’(1986) 등의 작품도 무속 및 영적인 존재를 다룬 영화가 있어 ‘한국적 오컬트’라는 말로 부르긴 한다. 이후 90년대 들어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2004) 등이 영적인 존재를 다루며 오컬트에 접근한 적이 있다. 

반면, ‘곡성’은 전작들이 보여준 한국 오컬트의 가능성을 뛰어넘어 아예 종주국인 할리우드까지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창의력을 보여주고 있다.

‘곡성’은 최근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을 받았을 때도 현지 상영 이후 외신들로부터 호평받았다. 버라이어티지는 ‘충격적이고 무시무시하며 기절할 정도로 놀랍다’며 극찬했고, 인디 와이어도 ‘미친듯한 오컬트 넌센스의 156분’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미국 영화전문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도 ‘신선지수 100%’를 기록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미 지역 개봉후 현지에서 극찬이 이어지고 있어 확대 개봉이 추진되고 있으며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드라마 '마녀보감'의 염정아 


드라마 ‘마녀보감’ - 주술에 걸린 공주 ‘조선 최초 마녀’로 캐릭터화


영화뿐 아니라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도 오컬트를 내세우는 예가 있다. JTBC ‘마녀보감’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실에서 흑주술에 의해 태어나 엇갈린 왕자와 공주, 또 저주에 걸린 공주가 운명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판타지 사극이다. 실존인물 허준의 젊은 시절을 상상력을 동원해 재가공했고 죽음의 저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공주를 ‘조선 최초 마녀’로 캐릭터화했다. 

나라의 안녕과 권력을 두고 벌이는 무당들의 사투, 흑주술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묘사되는 초자연적 현상 등이 기존 오컬트 영화의 장점을 벤치마킹한 듯 보인다. 침구 위에서 공중으로 몸이 떠오르는 모습은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고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배경음악 역시 보이지 않는 두려운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오컬트를 적절하게 적합 시켜 무기로 활용한 케이스다.

드라마 '마녀보감'에서 조선 최초 마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김새론의 모습


OCN ‘뱀파이어 탐정’은 8회 에피소드 전체를 오컬트로 꾸렸다. ‘영혼의 심판’이란 부제의 8회 방송분은 귀신에 빙의 된 여인과 무속인의 구마의식 등을 다뤘다. 애초 뱀파이어라는 서양의 판타지적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오컬트 소재까지 차용하면서 묘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오컬트의 유행은 국내뿐만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최근 오컬트 영화의 고전 ‘오멘’의 프리퀄을 제작하겠다고 밝혀 영화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오멘’의 주인공 캐릭터 데미안을 소재로 만든 스핀오프 드라마 ‘데미안’이 5월 초까지 미국에서 10부작으로 방영돼 호응을 얻기도 했다. 사탄의 아들이란 소재 자체가 가져온 충격과 그에 파생되는 흥미로운 이야기 등이 ‘오멘’을 인기 시리즈로 만든 요인이다. 지난 2006년 ‘오멘’의 리메이크 버전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상영을 마친 터라 일각에선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국내까지 불어닥친 오컬트 바람에 기대하는 이들이 꽤 많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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