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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Jun 17. 2016

'백희가 돌아왔다' 잘 만든 단막극의 힘!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깍두기 드라마’가 홈런을 날리며 선전해 눈길을 끈다. 지난 14일 종영한 KBS 2TV ‘백희가 돌아왔다’는 4부작 단막 형식으로, 정규 미니시리즈 제작이 지연되면서 시간 벌기용으로 급히 투입된 드라마다. 그런데 이 시도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10.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2위까지 올라갔다. 1위인 MBC ‘몬스터’와 불과 0.3%포인트 차이다. 톱스타 하나 없는 단막 형식 드라마가 미니시리즈 프라임 타임에 들어와 이 정도의 성적을 올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덩치만 키워 거창하게 시작했다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미니시리즈가 숱한 시기에 ‘중요한 건 콘텐츠의 질’이란 사실을 입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단막극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부추길 만한 사례로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유쾌한 코미디로 몰입도 높이며 선전 

‘백희가 돌아왔다’는 섬마을의 문제적 소녀 양백희가 성인이 돼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동극이다. 10대 시절 불장난으로 생긴 딸 옥희를 데리고 오면서 좌충우돌을 시작한다. 과거 백희를 좋아했던 남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딸 옥희의 친부가 누구인지 논란이 불거진다. 그 사이에 옥희는 엄마 백희의 학창 시절 행동 패턴을 그대로 따르며 학교의 ‘일진’이 된다. 각종 요란한 상황들을 뒤섞어놓은 코미디 드라마로 강예원이 백희 역을, 진지희가 옥희 역을 맡았다. 그 외 남자 주인공으로 김성오 등이 출연했다.

요즘 주가를 높이고 있는 강예원 등 그 나름 존재감 있는 캐스팅이 이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시간대 미니시리즈의 주연으로 내세울 만한 톱스타가 있었던 건 아니다. KBS의 주력 드라마가 아니란 이유로 홍보도 최소화됐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1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호평을 끌어내며 숱한 이슈를 만들어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과 동시에 매력을 어필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강도 높은 코미디에 다음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스토리로 몰입도를 높였다. 톱스타 캐스팅을 제외하면 ‘성공하는 드라마’의 필수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강예원-진지희 ‘일진 2대’ 능청 연기 눈길

그 나름 베테랑급 배우들이 모인 만큼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두 주연배우 강예원과 진지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대를 이어 섬마을 ‘일진’이 되는 모녀를 연기해 큰 재미를 줬다. 강예원은 다수의 코미디 영화에서 두각을 보였던 배우답게 몸 개그에 가까운 액션에 천연덕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무난히 소화해냈다. 영화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최근 부쩍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배우라 출연만으로도 꽤나 존재감이 부각됐다. 



아역배우 출신 진지희도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다. 엄마와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사고뭉치 10대 소녀 옥희를 능청스럽게 표현해 웃음을 자아냈다. 짝다리에 고개를 삐딱하게 튼 채 반항기 넘치는 말투를 쏟아내며 날라리 캐릭터에 빠져든 모습을 보였다. 특히 1회에서는 강예원보다 중심에 서서 스토리를 끌고 나가며 ‘원톱 주연’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그 외 김성오와 최대철-인교진-최필립 등 남자배우들과 개그우먼 김현숙의 열연도 눈길을 끌었다. 하나같이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탄탄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라 연기 면에 있어선 지적할 부분이 없다. ‘오버 연기’가 필요한 장면들이 주를 이뤘는데 누구 하나 처지지 않고 캐릭터를 살려내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한때 붐을 이뤘던 단막극의 시대

 ‘백희가 돌아왔다’의 성공은 단막극에 대한 방송계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도 한몫을 했다. 물론, 이 드라마 한 편이 잘됐다고 해서 다시 단막극 제작 붐이 일어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16부작 기준의 미니시리즈 제작 관행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된 만큼 드라마계 전반에 색다른 시도가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4부작이나 6부작 드라마가 기획될 때도 ‘백희가 돌아왔다’의 성공 케이스를 예로 들며 제작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거란 설명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때 단막극이 방송사의 주력 콘텐츠였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KBS가 ‘TV문학관’을 편성하고 매주 단막극을 선보였다. 그 시절 MBC도 ‘베스트셀러극장’이란 타이틀로 단막극을 만들어내고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만 해도 매주 한 편씩 업데이트되는 ‘영화 같은 단막극’에 시청자들이 열광했고 당연히 시청률 확보나 그 시간대 광고 판매도 문제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각 방송사 입장에서는 연속극 형태의 드라마를 만들던 PD와 작가들이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보여주고 실험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신인 작가와 연출자들이 정식 ‘입봉’하기 전에 실력을 테스트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단막극을 통해 실력을 입증하고 미니시리즈나 연속극을 연출해 빛을 본 이들이 숱하게 많다. ‘쪽대본’ 등 한국 드라마 현장의 고질적인 병폐에서 벗어나 완성도에만 치중할 수 있으니 제작진 입장에선 보람된 작업이었다. 시청자들도 흔한 드라마타이즈에서 벗어나 색다른 형태의 작품을 즐길 수 있어 다양성 측면에서 반길 만한 일이었다. 작품별로 수준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완성도 높은 수작이 자주 만들어져 안방극장을 풍성하게 해줬다.



 단막극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전환점 마련

 하지만 시간이 흘러 주중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및 일일극 등 드라마 시장이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굳어지면서 단막극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용이한 광고 판매를 위해 전략적으로 긴 호흡의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내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방송사는 스타 작가와 톱스타 위주로 긴 호흡의 드라마를 만들어 화제성을 높여야 했다. 또 이를 수익으로 연결시켜야 했다.

 반면, 단막극은 드라마 시장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선순환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스타 캐스팅이 쉽지 않고, 그만큼 주목도가 떨어져 ‘전략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KBS가 단막극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2009년에 한 번, 또 2011년에도 'TV문학관'을 부활시켰는데, 단발성에 그쳤을 뿐 꾸준한 단막극 생산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당시 ‘TV 문학관’이란 타이틀하에 편성된 서너 편의 단막극이 호평을 끌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단막극을 고정적으로 내보낸다는 건 방송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받쳐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좋은 드라마’를 포기하고 ‘막장 드라마’를 편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현실’과 ‘필요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KBS는 "우리마저 포기하면 단막극은 사라진다"는 기조로 단막극의 생명줄을 놓지 않았다. 올해 초에도 KBS는 4부작 ‘베이비시터’를 내놓고 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국내 드라마계에서 보기 힘든 수작이란 평가를 들었다. 3부작 ‘페이지터너’ 역시 4%를 뛰어넘는 시청률과 함께 호평을 들었다. 다만, 어떻게 만들어내도 시청률은 5% 미만에 그칠 뿐 눈에 띌 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니 주력 미니시리즈에 버금가는 기록을 올린 ‘백희가 돌아왔다’에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단막극이라 힘들다’는 말이 정답인 듯 여겨지던 방송계에, ‘백희가 돌아왔다’가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버렸다. 콘텐츠가 좋으면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법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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