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연기자 서현진이 뜨거운 인기를 누리며 2016년 새로운 ‘로코 퀸’(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자리에 올랐다. tvN 월화극 ‘또! 오해영’의 히로인으로 캐릭터의 희로애락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해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시청률 10%대를 넘어서며 tvN 월화극 사상 최고기록을 세운 드라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드라마의 힘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서현진이 보여주고 있는 매력의 비중이 크다. 드라마 ‘또! 오해영’과 서현진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숱한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서현진은 걸그룹 멤버로 데뷔해 드라마와 영화의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 이후 드라마와 영화의 조연을 거쳐 주연까지 올라온 인물이다. 트렌디한 드라마보다 지상파 주말극이나 일일극에 주로 모습을 보이더니 ‘또! 오해영’을 계기로 젊은 층이 열광하는 스타로 부각되고 있다.
황정음-민아 제치고 동시기 ‘로코 퀸’ 등극
지금 서현진의 인기는 상종가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일단 동시기 방송되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또! 오해영’의 주인공인 데다 타 경쟁작의 여자 주연배우에 비해 압도적인 주목도를 자랑하고 있다.
앞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연기를 보여주던 황정음이 MBC 수목극 ‘운빨로맨스’를 내놓으면서 이 시기 가장 두각을 보일 거란 예측을 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의 인기를 고려하더라도 ‘운빨로맨스’가 ‘또! 오해영’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여자 주연배우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서현진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기존 로코 퀸보다 한층 상큼한 매력을 가진 새 인물이 등장했으니 시선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황정음은 지난해에만 ‘킬미 힐미’ ‘그녀는 예뻤다’ 등 두 편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연속 히트시키며 경쟁상대가 없는 로코 퀸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하지만 ‘운빨로맨스’가 기대에 못 미치는 만듦새로 아쉬움을 남기면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다크호스에 기존 챔피언들이 밀리고 있는 모양새다.
오히려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 SBS 주말극 ‘미녀 공심이’가 호응을 얻으면서 주연을 맡고 있는 방민아가 서현진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방민아는 극 중 허점 많고 털털하고 귀여운 매력이 드러나는 캐릭터 공심이를 연기하며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 오해영’의 서현진과 마찬가지로 타이틀 롤을 맡고 있는 데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여주인공 캐릭터를 자기화하고 있다는 유사점이 있어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단, 드라마 자체의 화제성이 역시 ‘또! 오해영’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이 경쟁에서도 서현진이 우위를 차지한 상황이다.
지상파 주말극-일일극으로 중장년층에 어필
서현진은 2001년 걸그룹 밀크의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했다가 팀 활동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관계로 일찍 가수활동을 접었다. 이후 연기자로 전향해 2006년부터 드라마와 영화에 조연 및 단역으로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4년여 기간 동안 저예산 장`단편 영화에 주연급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존재감을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11년 MBC 미니시리즈 ‘짝패’에서 비중 있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안방극장에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같은 해 MBC의 광복절 특집극 ‘절정’(2011)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업계 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 같은 방송사의 주말극 ‘신들의 만찬’(2012)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비로소 인지도를 확보하게 됐다. 당시 서현진은 성유리의 맞수로 악역에 해당하는 캐릭터를 소화했다. 후속작 역시 MBC 드라마였다. 일일극 ‘오자룡이 간다’(2012)에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순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신들의 만찬’에 이어 중장년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 이어 안정적인 연기력과 인지도를 내세워 MBC 월화극 ‘불의 여신 정이’(2013)에 출연했으며, MBC 일일극 ‘제왕의 딸, 수백향’(2013)에서 타이틀 롤이자 드라마 전체를 이끄는 ‘첫 번째 여주인공’으로 나서게 된다.
tvN과 작업하며 이미지 전환 계기 마련
MBC에서 일일극과 주말극 위주로 활동하며 높은 연령대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생활 연기자’ 느낌이 강했으며 ‘스타’ 또는 ‘트렌드’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사실 서현진이 MBC와의 작업을 이어가며 비슷한 느낌의 드라마에 출연했더라면 기복 없이 롱런했을지언정 지금처럼 주목받는 일은 없었을 게 분명하다. 의도였는지 방송계 흐름을 따르다 받아들인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서현진은 ‘제왕의 딸, 수백향’ 이후 또 한 편의 단막극 출연을 마지막으로 비지상파 콘텐츠에 눈을 돌렸다. 첫 시도는 tvN 금토 드라마 ‘삼총사’(2014)였다. 이진욱-양동근에 아이돌스타 정용화까지 합류해 판을 키운 조선판 액션 드라마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tvN 금토 드라마 시간대에 확고한 팬층이 없을 때라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남자배우 중심의 드라마라 서현진은 스스로를 부각시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어진 시도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서현진이 tvN에서 작업한 두 번째 드라마는 ‘식샤를 합시다2’(2015)였다. ‘먹방’과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이란 참신한 콘셉트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시리즈다. 서현진은 이 드라마에서 복스러운 ‘먹방’뿐 아니라 몸 사리지 않는 코믹 연기를 보여줬다. 또한, 절절한 감정선까지 잘 살려내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리는 트렌디한 연기자의 이미지로 스스로를 인식시켰다. ‘식샤를 합시다2’ 이후로 ‘굿바이 싱글’ 등 몇 편의 충무로 상업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하며 활동 폭을 넓혔고 최근 ‘또! 오해영’이 화제작으로 떠오르면서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안정된 연기력에 튀지 않는 외모가 주 무기
중장년층에 어필하던 연기자가 갑작스레 로맨틱 코미디의 스타로 떠오른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기존 이미지를 깡그리 갈아치우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전에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며 스스로를 갈고닦아야만 한다. 그런 과정을 생각한다면 지금 서현진의 변화는 놀랍다. 날씬하고 깨끗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단번에 ‘주인공급’이라고 부를 만큼 한눈에 들어오는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다. 중견 연기자들과 함께 일일극과 주말극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쌓긴 했다. 하지만 주말극과 일일극의 색깔이 트렌디 드라마와 달라 연기톤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한다. 말이 쉽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현진은 한계를 넘어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몸 사리지 않고 망가지며 웃음을 주는가 하면 순간 톤을 바꿔 감정을 드러내며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굳이 예쁜 척을 하지 않아도 주어진 역할에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호감도가 높아진다. 마치 과거 공효진이 스타로 떠오르던 시절을 다시 보는 듯하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