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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Oct 17. 2016

8시간 라이브, 이승환의 놀라운 기록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이니다.


'공연 장인' 이승환이 또 한 번 사고를 쳤다. 이번에는 8시간 27분이란 긴 러닝 타임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역량을 과시했다.  

지난 8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이승환의 콘서트 ‘빠데이7’은 당일 오후 4시 4분에 시작한 후 자정을 훌쩍 넘겨 9일 오전 1시 50분 즈음 막을 내렸다. 3부로 나뉘었으며, 도중에 30분씩 두 차례 진행된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총 8시간 27분 35.56초에 걸쳐 공연이 펼쳐졌다. 이승환은 이 시간 동안 무려 77곡을 소화했다. 가수 1인 단독콘서트의 러닝 타임으로, 또 가수 1인이 부른 곡 수를 따졌을 때도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승환의 도전을 단순히 ‘기록 깨기’ 수준에서 이해해선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뮤지션과 그 행보에 동참한 팬들의 놀라운 에너지가 만들어낸 결과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빠데이7’, 이승환 공연의 집대성

앞서 이승환은 지난해 9월 19일 ‘빠데이-26년’ 콘서트에서 6시간 21분 27초에 달하는 러닝 타임을 소화해 화제가 됐다. 이번 공연 ‘빠데이7’은 지난 공연의 기록을 경신하겠다는 포부로 기획됐으며 7시간에 걸쳐 70곡을 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빠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승환의 열성팬들, 속칭 ‘빠’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결과적으로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어 8시간 27분 동안 77곡을 부르며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긴 공연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3부로 나눠 펼친 ‘빠데이7’은 현재 이승환이 진행하고 있는 여러 형식의 콘서트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공연의 1부는 이승환표 발라드로 채운 ‘온리 발라드’라는 타이틀로 진행됐다. 데뷔 당시에 불렀던 소프트한 느낌의 노래부터 웅장한 규모감이 느껴지는 대곡까지 여러 종류의 발라드를 선보였다. 발라드를 부를 때의 이승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또 발라드 넘버를 통해 이승환을 기억하는 대중을 위한 안성맞춤형 기획이다. 

2부는 ‘오리진: 공연의 기원’이란 제목하에 각양각색의 볼거리와 히트곡이 함께하는 무대로 꾸몄다. 다양한 무대장치와 이벤트가 곁들여져 즐거움을 자아내는, 이승환이 시작하고 이후로 국내 음악계 전반으로 확산된 형식의 공연이다. ‘공연의 기원’이란 타이틀까지 쓰면서 “이런 식의 공연 문화를 정착시킨 게 바로 나”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3부 ‘클럽공연’에서는 격렬한 록 넘버를 부르며 열띤 분위기를 자아냈다. 샤우팅에 그로울링 등 변화무쌍한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한, 록커 이승환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로 5차례나 이어진 앙코르 무대까지 소화한 후 마지막 곡으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부른 이승환은 긴 시간 함께한 밴드 및 스태프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무대 인사를 하며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체력+정신력+팬심’이 만들어낸 결과 

긴 시간 동안 이승환은 눈과 귀가 의심될 정도로 놀라운 체력과 실력을 과시했다. 1부를 마친 후 “목 상태가 생각만큼 좋지는 않다”고 털어놓던 이승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목이 회복되는데 나 스스로도 신기하다”는 말로 팬들을 안심시켰다. 실제로 이승환은 한 곡도 빠짐없이 공을 들여 기운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줬고, 3부에서 거친 록 넘버를 부른 뒤에도 부드러운 발라드의 중저음을 섬세하게 소화해 지켜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세차게 머리를 흔드는 헤드뱅잉을 하고 펄쩍펄쩍 무대를 뛰어다닐 때에도 떨리는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음정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거의 쉴 틈도 없이 노래하면서도 갈라짐 없이 깔끔한 목소리로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었다. 뛰어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트레이닝을 통해 다듬어온 보컬의 힘으로 비교 불가능한 공연을 펼쳤다.


이승환과 함께한 밴드와 스태프들의 공도 높이 사야 한다. 8시간 27분에 걸쳐 집중력을 발휘하며 연주하고 또 사운드, 조명, 특수효과를 성공적으로 구현했으니 ‘극한직업’이 따로 없다.

이 굉장한 무대를 함께 만들어낸 팬들의 열정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무대에 오른 이승환이 “나보다도 당신들이 더 걱정”이라고 했을 만큼, 쉽지 않은 레이스를 함께하며 마지막까지 뜨겁게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이승환은 ‘빠데이7’의 본 공연에 앞서 하루 전날 리허설 과정을 팬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종종 시도하는 ‘리허설 공연’으로, 연습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공연이 준비되는 과정을 팬들에게 공개하는 형식을 띤다. 국내에서 리허설 공연을 시도한 대중 가수는 이승환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이승환은 공연 전반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하고 이끌며 총연출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가학적’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힘든 공연을 끝냈는데도 이승환은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빠데이7’을 끝내자마자 곧장 16년째 이어오고 있는 자선공연 ‘차카게 살자’ 준비에 돌입했다. 수익금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는 이승환의 브랜드 공연으로, 이번에는 유시민 작가와 만화가 강풀 등의 강연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무대로 꾸몄다. 


긴 시간 뿐 아니라 완성도까지 높인 공연

“이승환이 공연 시간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으냐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저 긴 시간에 걸쳐 공연한다는 게 대단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승환의 공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긴 공연시간’뿐 아니라 그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공연에 대한 노하우를 대방출하고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무대를 지키는 ‘천생 가수’의 면모를 보여주니 반기를 들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다.

타고난 보컬을 믿고 연습을 게을리하는 가수도 있다. 그러고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해 대중을 선동한다. 막상 그의 공연은 퀄리티가 떨어져 음악을 제대로 듣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다만, 밴드의 연주실력을 따지거나 가수의 연습량 등을 가늠하지 않고 그의 목소리 자체를 들으러 온 대다수 관객은 박수를 보내며 열광한다. 

그러니 대중에 친절한 가수로 사랑받으며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라이브가 아니면 출연하지 않겠다며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제작진에 맞서지도 않았을 것이며, 매체 기자 및 평론가들을 챙기며 ‘홍보에 소질 없는’ 이승환과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수들에게 있어 이승환은 분명 불편한 존재다. 평소에도 3~4시간을 넘나드는 시간 동안 완성도 높은 공연을 펼치며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을 소화하는 타 가수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인물이 이승환이다. 여기에 이번 ‘빠데이7’의 놀라운 성과까지 더하며 “나는 이 정도 할 수 있는데 너희들은?”이라고 물으니 이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싶다.



이승환은 종일토록 이어지는 ‘빠데이7’을 성사시키기 위해 관객을 위한 식사와 간식, 음료 등을 준비하는데 4천만원이 넘는 비용을 썼다. 동행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다. 여기에 최상의 사운드와 볼거리를 위해 또 비용을 쏟아부었다. 공연을 통해 많은 수익을 남길 수가 없는 구조다. 그저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고집불통 뮤지션의 욕심으로 가득 채운 공연일 뿐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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