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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Nov 02. 2016

감성적 미남 유해진의 매력

[대중문화 이야기] 

        

한 사람이 열심히 자기 인생을 살아갈 때, 그리고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 인정받고 호감도까지 높일 때 그 주변에선 은근한 후광이 발생한다. 후광에 매료된 이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어 따르게 되니 그는 당연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쑥쑥 성장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하건 비슷하게 적용되는 공식이다. 특히 ‘노력해도 정상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 치부되던 이가 누구도 예상 못 한 자리까지 올라갔을 때는 반전의 쾌감까지 더해져 지켜보던 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지금 배우 유해진의 상황이 그렇다. ‘잘생기지 않은’ 외모로 연기를 시작해 ‘만년 조연’에 그쳐야 할 것 같았던 배우가 단독 주연 자리를 따내고, 또 순전히 연기력과 호감도로 주연 영화를 히트작 대열에 올렸다. 객관적으로 ‘미남’이라 볼 수 없지만, 지금 누구도 유해진을 두고 ‘못생겼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뭘 하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감성적 미남’의 이미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럭키' 4주차에 600만 대박

유해진의 첫 단독 주연작인 영화 ‘럭키’는 실력 있는 킬러 형욱이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진 뒤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같은 시간, 삶의 의욕을 잃고 신변정리를 하기 위해 목욕탕에 들른 무명배우 재성이 이 과정을 보고 자신과 형욱의 옷장 키를 바꾸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기억을 잃은 킬러 형욱은 자신이 들고 있던 키로 열게 된 옷장 속 신분증 등을 보고 본인이 무명배우 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유해진이 맡은 역이 킬러 재성이며, 무명배우 재성 역에 이준이 캐스팅됐다.

사실 ‘럭키’는 만듦새만으로 봤을 때 수작은 아니다. 서사 구조에 짜임새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흐름에 있어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엿보이는 등 군데군데 허점이 많다. 2000년대 초반에 무수히 만들어졌던 조폭 코미디 영화들을 연상시켜 ‘촌스럽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런데, 지금 누구도 ‘럭키’를 두고 만듦새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출발 단계에서부터 ‘완성도’보다 ‘웃음’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대중영화인 데다 무엇보다 그 ‘웃음’에서 오는 만족도가 꽤나 높기 때문이다.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인데, 대중영화의 경우 ‘재미있게만’ 만들면 최소한 평단으로부터 욕먹을 일이 없어진다. 기자나 평론가들도 사람인지라 본인이 실컷 웃거나 바짝 몰입하며 본 영화를 두고 굳이 결점을 부각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럭키’가 그렇다. 그저 흐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허점을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메인 캐릭터를 부각시켜 그 인물의 행동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데 이 전략이 꽤나 그럴싸하게 먹혀든다. 이 경우 배우의 능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이준의 연기가 꽤나 인상적이었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물을 만난 유해진은 아예 ‘원맨쇼’를 펼치며 관객을 홀린다.10월 13일 개봉한 ‘럭키’는 4주 차에 관객 수 6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손익분기점이 180만 명 선에 불과했던 영화가 벌써 3배를 훌쩍 넘기는 수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그 성과의 중심에서 유해진은 일등공신으로 꼽히며 박수를 받고 있다.



햇살 전략으로 꾸준히 호감도 높여 

해와 바람의 ‘나그네 옷 벗기기 승부’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이야기 속에서 단번에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했던 바람은 조용히, 천천히 온기를 높인 해의 전략에 무릎을 꿇고 만다. 비교하자면 유해진이 그렇다. 오랜 시간 여유를 가지고 다가가 대중의 마음을 녹이는 데 성공했다. 말 그대로다. 유해진은 1990년대 초반에 연극을 시작해 1997년 영화 ‘블랙잭’의 단역으로 스크린에 발을 디뎠고 지금까지 20여 년에 걸쳐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 20여 년 동안 출연한 작품에서 대부분 조연 캐릭터를 맡았고 ‘신스틸러’라는 수식어에 만족해야 했다.영화계에 들어온 지 3년여 만에 ‘신라의 달밤’과 ‘무사’ 등의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 캐릭터를 소화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사실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는 ‘왕의 남자’나 ‘타짜’를 통해 보여준 연기로 서서히 ‘주연급 조연’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해진이 ‘주연배우’가 됐던 건 아니었다. ‘절친’ 차승원이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메인 인터뷰이’로 초대받을 때 ‘서브 인터뷰이’로 동반 출연해 카메라에 모습을 보이는 정도의 ‘급’이었다.



당시 이문식과 김수로 등 조연으로 활동하던 배우들이 돌연 스타로 떠오르면서 단독 주연 영화를 찍곤 했다. 그 와중에도 유해진은 꾸준히 ‘주연급 조연’으로 활동했다. ‘이장과 군수’ ‘트럭’ 등의 영화를 통해 비로소 ‘주연’으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을 때도 유해진의 옆에는 항상 더 인지도 높은 스타급 배우가 함께했다. ‘주연’이지만 작품 전체를 통째로 책임지고 가는 ‘스타’는 아니었단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 유해진의 활동 사항에 있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어떤 작품에서든, 심지어 ‘무릎팍도사’에 차승원의 ‘절친’ 자격으로 동반 출연했을 때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법을 알고 실행했다는 사실이다. 김혜수와의 공개 열애 등 몇 가지 이슈로 인지도를 높인 적도 있었지만 일단 연기력을 기반으로 인정받았고, 인터뷰 등의 자리에서 캐릭터가 아닌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에는 가식 없이 접근해 호감도를 높였다. 오랜 기간에 걸쳐 해처럼 꾸준히 열기를 뿜어내며 존재감을 알렸다. 욕심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

진정한 배우라는 평가를 듣는 유해진. 조연급 이미지를 탈피해 주연 자리에 올라선 배우들이 “주연이 아니면 출연 안 한다’며 자신에게 들어오는 작품 제의를 거절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힘들게 올라선 자리를 지키기 위한 그 나름의 전략일 수 있겠지만, 그러다가 막상 출연작이 흥행에 몇 차례 실패한 뒤에는 더 이상 작품이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곤 한다. 주연 캐릭터에 매달리다 다시 조연으로 내려가게 된 만큼 ‘실패했다’는 이미지가 생겨 낭패를 보기도 한다. 이 같은 배우들에게는 데뷔 후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주목받고 주연급으로 올라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따져보면 유해진이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여가던 과정에서 단독 주연 영화를 찍지 못했다는 건, 혹은 욕심을 부리며 단독 주연작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는 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유해진은 충분히 시간을 가지며 스타급 배우의 옆에서 가장 돋보이는 ‘세컨드 또는 서드 주연’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심지어 예능까지 사방팔방 활로를 개척해 둬 단독 주연작이 실패하더라도 따로 갈 길이 널렸다. 그러니 단독 주연이란 모험을 시도해 봐도 무관할 때다. 마침 그 모험이 성공을 거뒀으니 금상첨화다. 최근 연기파 배우 오달수가 첫 단독 주연작 ‘대배우’를 내놨다가 흥행에서 쓴맛을 본 것과 비교해 봐도 지금 유해진은 운세까지 영화 제목처럼 ‘럭키’ 그 자체다.



온기를 전달할 때 감안해야 할 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거다. 변함없이 온도를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유해진이 택한 전략은 ‘특별할 것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tvN ‘삼시세끼’에 출연할 때 유해진은 요리 잘하는 차승원을 넘어설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요리하는 과정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에서 그가 분량을 확보한 비결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인간 유해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고 너스레를 떨고 낚시를 하며 성실하게 평상시 모습을 드러냈다. 연기 잘하고 인간미 넘치고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배우에게 대중이 호감을 가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건 유해진이 오랜 기간에 걸쳐 노력한 끝에 얻어낸 이미지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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