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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Nov 05. 2016

무너진 정권, 반영하는 대중문화

[대중문화 이야기]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할 만한 일들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와 비선 실세를 둘러싼 믿지 못할 이야기들로 나라가 들썩거린다. 벗겨 내고 벗겨 내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가 불거져 한 편의 정치극을 방불케 한다. 심약하고 무능력한 권력자와 곁을 지키며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이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과해 보인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고 슬플 따름이다.

비꼬는 듯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번 사태로 영화나 드라마 업계 종사자들은 취할 수 있는 소재의 폭을 더 넓힐 수 있게 됐다. 어지간히 과장된 소재의 정치극이나 범죄극이 나와도 ‘2016년 대한민국의 그 이야기’보다 약하다는 말을 들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심한 현실 속에서 대중문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다. 그저 잠시 머리라도 식혀보자는 의미에서 화제가 됐던 정치극과 범죄극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정-경-언론 각계의 음모와 배신이 얽힌 작품들이다. 그래도 이건 가상세계일 뿐이니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내부자들' 정-검-언론 비열한 동조

정치계와 언론, 그리고 검찰이 작정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손을 맞잡는다면? 말이 필요 없다. 지금 현실에서 보고 있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지난해 말 개봉돼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내부자들’은 정치인과 언론인의 비열한 동행과,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려는 이들의 한판승부를 다뤘다.

이기적인 욕심으로 똘똘 뭉친 정치인과 그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력 언론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금을 대는 재벌들도 있다. 그들의 비리를 밝혀내려 고군분투하는 검사도 있지만 쉽지가 않다. 자금줄 역할을 했던 기업인을 기껏 증인으로 잡아놨더니 뒤에서 손을 써 자살하게 만든다. 증언이든 증거든 도무지 잡아낼 길이 없다. 결국엔 검사가 직접 ‘더러운 판’에 내부자로 들어가 증거를 확보한 뒤 ‘내부 고발자’로 거듭난다.

작금의 사태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영화 중 한 편인데, 그럴 만한 것이 현실과의 사이에서 비슷한 부분이 꽤나 많이 발견된다. 증인이 될 만한 기업인의 자살 신은 검찰 출두 직전 극단적 선택을 한 모 그룹 부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부패한 대통령 후보를 물심양면 밀어주는 유력 언론사는 현실 속에서 최고 권력자와 그를 뒷받침해주느라 만신창이가 된 모 지상파, 신문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펀치' '야왕' 부패한 정치인의 추락 다룬 드라마


드라마 ‘펀치’와 ‘야왕’도 지금의 사회 현실에 빗대 살펴보면 흥미롭다. 일단, 상대적으로 월등히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 ‘펀치’를 살펴보자. 2014년 말부터 2015년 2월까지 방영됐던 이 드라마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마다하지 않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 이합집산하고 갈라선 뒤에는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는 ‘나쁜 놈’들이다. 그중에서도 사람 좋은 척 포장하며 더러운 짓을 일삼는 서울지검장이 나쁜 놈 중의 ‘끝판왕’이다. 대통령 취임을 최종 목표로 잡고 정상 등반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오직 자신의 야망을 위해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캐릭터가 현실 속의 한 인물을 떠올리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야왕’은 ‘펀치’에 비해 유치한 드라마다. 촘촘하지 못한 내러티브에 앞뒤 없이 돌변하는 캐릭터 때문에 방영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극 중 최고 권력층이 되고자 가족까지 버린 캐릭터의 비참한 최후가 나름 통쾌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영부인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 청와대를 향한 특검이 진행되기도 한다. 당당하게 청와대 영부인 방문을 열어젖히고 영장을 들이미는 특별검사팀원의 모습은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대신 보여주는 듯하다.


'올 더 킹즈맨' 신념에 찬 권력자의 타락

영화 ‘올 더 킹즈맨’은 신념에 차 있던 재정관이 비리를 폭로해 유명세를 얻고 주지사가 됐다가 서서히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최초 주지사 선거에 나갈 때는 직접 권력을 가지고 부패한 자들을 처단하겠다고 결심하지만 막상 주지사가 된 이후에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고 그렇게도 비판하던 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짓을 스스럼없이 행한다.

‘올 더 킹즈맨’이 보여주고자 한 건 ‘세상을 바꾸려 한 사람이 세상에 의해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려는 의도가 없었던, 국민의 안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중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실 속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상황과는 다르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 억지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그 안에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동반된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얼굴을 치켜든 채 당당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름 유사하게 느껴진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올 더 킹즈맨’에서 그려낸 타락한 주지사는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고 넘어졌을지언정 본바탕이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권력자와 비선 실세 묘사한 웹툰‘로렌스를 구해줘’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로렌스를 구해줘’는 최근 최고 권력자와 비선 실세 사건이 불거진 뒤 온라인 유저들을 중심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웹툰은 재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고결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결동은 외부와 격리된 채 철저하게 재벌 중심으로 형성됐으며 그 안전한 곳에서 재벌들은 음모를 꾸미고 향락에 빠져 지낸다. 그들을 모시는 층도 계급별로 체계화됐으며, 간혹 인권유린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면서도 ‘돈’ 때문에 탄탄한 일자리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이 웹툰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시즌1의 끝 무렵에 등장한 대통령과 ‘실세’의 관계 때문이다. 웹툰 안에서 고결동의 공개 행사에 초대된 대통령은 겉보기에 재벌 회장의 정중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보이는 것과 다르다. 재벌은 대통령에게 육두문자를 날리고 “대본대로 똑바로 해라”며 살벌하게 대한다. 물론, 카메라를 비롯해 보는 눈이 많으니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는다. 대통령 역시 머리 숙이는 재벌 회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재벌의 날 선 압박에 쩔쩔매며 난감해한다. 최고 권력자와 비선 실세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장면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현실에서 불거진 상황을 따져보면 웹툰 작가가 천리안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놀랍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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