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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Nov 25. 2016

영화 속 대통령은 이리도 멋진데...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와 비선 실세들이 나라를 망쳐 먹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국가가 휘청거리고 있다.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어이없는 표정에 한숨짓는 이들이 넘쳐난다. 한심한 상황 속에서도 숟가락 얹어 한 자리 차지하려는 이들이 속출하고 문제의 당사자들은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국민들이 넘쳐나는데도 현 상황을 만든 최고 권력자는 책임을 회피하고 여전히 ‘불통’으로 일관한다. 차라리 말 못하는 짐승과 소통하는 게 더 마음 편할 듯하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찾고자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묘사된 ‘그럴싸한 대통령상’을 찾아봤다. 적어도 이 글에서 소개하는 극 중 대통령이나 왕은 권력에 대한 허황된 야망, 또 위선과 거짓으로 일관하거나 머리가 나빠 상황 파악을 못하는 이들이 아니다. 정치경험이 부족해도 상식적인 판단을 할 줄 알고 국가 최고 권력자이자 책임자의 역할에 대해 소신 있는 결정을 할 줄 아는 이들이다. 물론 그런 인물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면 나오기 힘들고, 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정치적 뜻을 펼치는 게 쉽지 않다. 어차피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하니 그저 영화를 통해서나마 잠시 위로받자는 의미에서 준비해 봤다. 



'감기' 차인표, “내 나라와 국민 내가 다 책임집니다”

작금의 현실에 반하는, 이상적인 대통령상을 제시한다. 영화 ‘감기’(2013)는 감염되면 48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이겨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급기야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섞인 도시 전체를 폐쇄한 데 이어 미국 측의 ‘도시 폭격’ 결정까지 떨어진 긴박한 상황. 극 전체의 완성도나 재미와 별개로 이때 펼쳐지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측 지휘관의 신경전이 특히 인상적이라 이 영화를 골랐다.   

극 중 차인표가 연기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바짝 기합을 넣고 미국에 맞선다. 작전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도시 상공으로 전폭기를 띄워 폭격을 가하려던 순간. 차인표는 대통령의 직권으로 수방사에 ‘미국 전폭기 격추’를 명한다. 명령을 철회하라는 미국 지휘관의 말에 차인표는 “정식으로 경고하는데 진짜로 격추시킬 것”이라며 “내 나라 국민 내가 다 책임진다”며 폭격작전을 중지하라고 일갈한다.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의 퍼런 서슬에 미국이 꼬리를 내린다.개봉 당시에도 해당 신이 꽤나 많은 관객 사이에서 ‘속 시원한 장면’으로 꼽히곤 했는데, 최근 벌어진 국가적 위기와 맞물려 다시 한 번 회자되고 있다. 결재 운운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일단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300여 명의 국민을 바닷물에 수장시킨 대한민국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청와대발 막장 드라마까지 펼쳐져 실소를 머금게 만들고 있다. ‘감기’의 차인표처럼 신념 있는 대통령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나 최고 권력자의 비선 실세가 비리를 저지르는 일 따위는 일어날 수 없었을 터. 아쉽고 안타깝고 참담할 따름이다.



'광해' 이병헌, "내 나라 내 백성이 천 곱절 중요하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청와대의 CJ그룹 압박설이 불거지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 영화다. 이 영화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해군 시대의 사라진 15일을 소재로 그 사이에 임금과 닮은 제2의 인물이 잠시 궁에 머물렀을 것이란 상상력을 가미했다. 역사적으로 폭군과 성군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광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폭군 광해의 대역으로 천민 출신 광대가 임금 흉내를 내는 동안 성군 역할을 했다는 식의 전개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광해와 광해를 흉내 낸 광대 하선 등 1인 2역을 해내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극 중 궁에 들어가 팔자에 없는 왕 노릇을 하게 된 광대 하선은 당파싸움에 여념 없는 대신들을 배제하고 민생을 염려하며 나라를 위해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히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자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는 벼슬아치들을 꾸짖으며 성군으로서 올바른 정치를 한다. 사실 극 중 하선의 판단은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이뤄진다. 그렇기에 정확하며 합리적이다. 백성이 있기에 나라가 있고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 살림을 잘 꾸려 나가기 위해 왕이 있는 것인데, 자기 자리 하나 지키는데 급급해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릇된 판단을 한다면 그를 왕이라 부를 필요가 없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난 내 나라 내 백성이 백 곱절 천 곱절은 더 소중하오.” 하선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백성을 착취하며 당파싸움을 일삼는 대신들을 향해 내뱉은 한마디다. 천민이 왕의 자리에 올라 성군이 된다는 설정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들어 청와대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청와대가 CJ를 압박한 원인 중 하나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는 지금,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그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만 한다. 하긴 부끄러운 걸 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데이브' 케빈 클라인, 산수만 배웠어도 해낼 서민정책 실현

'데이브’(1993)는 직업 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남자 데이브가 대통령과 꼭 닮았다는 이유로 그의 대역으로 나서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데이브를 잠시 자신의 자리에 허수아비처럼 세워두고 여비서와 은밀한 시간을 즐기려던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져버린다. 어쩔 수 없이 백악관은 데이브를 실제 대통령인 척 꾸며 쓰러진 VIP의 공백을 메우려 한다.극중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상당한 능력을 가진 영리한 인물이지만 국민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며 영부인을 두고 바람까지 피운다. 반면, 그의 대역으로 나선 데이브는 천성이 바르고 유머까지 겸비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1인 2역은 배우 케빈 클라인이 맡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건 국회의 반대에 부딪쳐 통과되지 못했던 서민정책을 ‘가짜 대통령’ 데이브가 정리해버리는 과정을 묘사한 신이다. 자금조달문제가 걸린 서민정책 해결을 위해 데이브는 각 부처에서 불필요할 정도로 높게 책정된 예산을 삭감하고 이를 모아 서민들을 위해 사용한다. 초등학교에서 산수만 배웠어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널려있는데도 각종 이해관계와 특정 부처 또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필요 이상으로 높게 책정된 고위 공무원들의 임금과 각종 진행비만 줄여도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는 진행될 수 있을텐데 현실에선 그게 쉽지가 않다.

데이브는 정부 각계 인사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진행되던 일을 뒤집어 상식선에서 진행하려다 반대세력으로부터 린치를 당하기도 한다. ‘바른 일’을 하다 그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미움을 사게 된 셈이다. 신념만 있다고 좋은 정치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옳은 일’을 밀어붙인다고 해서 성군이 되는 건 아니다. 바른 생각과 신념을 가진 인물이 나와도 뜻을 펼치기 위해 넘어야할 장애물이 많다는 건 지극히 슬픈 일이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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