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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Nov 25. 2016

이승환과 정우성의 외침에 위로받다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뮤지션 이승환을 필두로 조PD-김제동 등 연예인들이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를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소셜테이너’ 김제동은 말할 것도 없고 개그우먼 김미화와 배우 김규리, 가수 정태춘, 밴드 크라잉넛, 배우 정우성 등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당당하게 중심으로 나와 대다수 국민들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문제점을 꼬집거나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을 만들어 무료 배포하고, 또 무대 위에서 연주하거나 발언하며 기꺼이 재능을 기부한다. 정우성은 자신의 출연작 '아수라'의 대사를 인용하며 대중 앞에서"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속 시원하게 외쳐 화제가 됐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연예인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선 연예인들은 눈치 보지 않는다. 이번 경우는 특히 그렇다.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식 이하의 망언을 늘어놓고 있는 대통령을 향해 ‘하야’를 외치며 국민의 편에 서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에 미칠 타격 따위는 생각지 않고 정부를 향해 바른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한반도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승환, 뮤지션 동참 유도하며 국민 위로

이승환은 이 한심한 사태가 불거진 이후부터 연예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가 드러난 직후 자신의 회사 건물 외벽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이후 이효리`전인권과 함께 무료 음원 ‘길가에 버려지다’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길가에 버려지다’는 이승환과 절친한 작곡가 이규호의 곡이다. 이승환이 이규호와 함께 공동 프로듀서로 나섰으며 유명 세션들이 참여해 재능 기부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이승환은 이 곡을 내놓으며 “음악인들의 작은 몸짓으로 시작된 국민 위로 프로젝트가 큰 울림이 돼 문화계의 움직임으로 확산되리라 믿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리고 이승환의 믿음은 현실에 그대로 반영돼 수많은 뮤지션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있다. 덕분에 ‘바로 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염원이 담긴 두 번째, 세 번째 국민 위로 곡의 탄생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18일 공개된 ‘길가에 버려지다’ 두 번째 버전에는 윤도현, 장필순, 한동준, 김광진, 크라잉넛을 비롯해 무려 37개 팀 가수들이 소절을 나눠 부르며 동참했다.



작곡가 윤일상과 래퍼 조PD도 무료음원 ‘시대공감 2016’을 배포하며 뮤지션들의 재능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윤일상은 이 곡을 내놓으며 “원곡뿐 아니라 트랙도 함께 올렸으니 랩 하시는 분들은 원작자를 밝히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어디든 업로드해도 좋다”고 알렸다. 이승환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위한 곡으로 널리 활용해달라는 의미로 남긴 말이다.


사태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과 화법으로 잘못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라 도무지 언제 나라가 안정될지 알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이승환이 놓은 불씨가 큰 불길로 번져 시야를 밝혀주며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군부 독재 치하의 1980년대에 활동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처럼, 아픈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던 민중가수의 존재가 간절해지는 시기다. 더 이상 주목도 높은 민중가요나 가수가 없는 상황에서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뮤지션들의 사회참여는 그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낸다는 차원에서 반길만한 일이다. 이들의 행동을 단순히 ‘대중선동’으로 해석하거나 현안에 대한 이해 없이 인기관리를 위한 ‘경거망동’이라 부른다면, 그런 당신이야말로 머리를 쥐어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마땅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연예인의 이슈 파이팅, 도대체 왜 문제가 되나?

지금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당선 이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에 불만을 가진 반대 진영의 시위와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할리우드 스타들도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 당선이 확정된 차기 대통령을 향해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향력이 탁월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공개적으로 버락 오바마를 지지해 선거운동을 도왔으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특정 정치인을 대놓고 지지하거나 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스타들을 매도하는 이들은,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 오히려 스타들의 소신 있는 발언으로 이해하고 넘기는 이들이 많다.


반면, 한국의 경우 연예인들의 사회참여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무시하는 케이스가 허다하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유교문화, 그리고 학벌과 물질과 인맥으로 계급을 나누는 풍토가 이 나라를 이룬 근간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예인들을 그저 ‘천한 광대’로 취급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한편으로 명예와 부를 가진 연예인들에 대한 질투심과 일방적인 반발심리가 작용해 “인기를 위해 대중을 선동하는 게 아니냐”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특정 이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과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는 연예인들도 있다. 하지만 대중은 연예인들이 그런 발언을 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매도하려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사회 지도층이라 할 만한 인사들은 자신의 행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탄압까지 일삼았다. 물증이 없어 증명하기 쉽지 않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 고 신해철이 사회 이슈에 대해 강한 어조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100분 토론’의 주요 논객이 됐을 때도 지지층이 생긴 만큼이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김제동과 윤도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정권교체 이후 일자리를 빼앗기는 곤욕을 치렀다. 사회는 어차피 1%의 지도층이 이끌고 간다. 그러니 뭣도 모르는 너희들은 그저 ‘가만있어라’는 식의 압박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분위기가 이렇다고 해서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특히나 지금처럼 국기가 흐트러져 나라가 휘청거릴 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이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가 아닐까. 대중이 결집할 수 있도록 구심점이 될 만한 존재가 필요한 때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고 자격을 잃은 대통령이 뜬금없이 헌법상 책무 운운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주변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릇된 자신의 사고방식을 밀어붙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나라 꼴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찰 수사 피해가겠다며 시간 끌기나 하고 있다. 차라리 피해가겠다는 생각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다. 주변 가신들에 의존해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질질 끌려다닌다. 이 와중에 문제점으로 가득한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들 앞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지극히 비밀리에 무사체결됐다. 여러모로 국민과의 '소통'은 무시한채 진행된 일이다. 



대통령을 둘러싸고 철벽을 친 가신의 무리도 만만치 않다. 오롯이 제 목숨 하나만 부지하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나라를 위기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차피 비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이 지금까지 이 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역사에서 우리나라는, 그랬다. 앞으로 이 상황이 마무리 되더라도 그 한심한 작자들은 어설픈 처벌을 받고 난 뒤 다시 권력을 행사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 연예인들도 결국은 향후 자신에게 닥칠 후폭풍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그 용기를 칭찬해주진 못하더라도 특별한 이유없이 비난하진 말았으면 한다.

지난 12일 광화문 집회 무대에 오른 이승환은 야당을 향해 “내가 여러분들 편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하지 마라. 나는 노래하는 가수이고 그저 시민들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 보고 이것저것 재지 말고 국민들 뜻에 따라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 틈을 엿보는 정치인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에서 현 정권의 문제점을 거침없이 지적하던 이승환을 탐내고 정치적 행보에 동참시키려던 시도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살펴보자.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제 목숨 유지에 급급한 정치인들보다 이승환이나 정우성 같은 연예인들의 행동이 더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 이슈 파이팅에 동참한 연예인들의 행동이나 그들이 가진 생각이 모두 옳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 함부로 폄훼하지 말자는 소리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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