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올해 들어 충무로에 시리즈물 제작에 대한 소식이 들려와 눈길을 끈다. 김남길과 손예진 등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해적’, 그리고 권상우-성동일의 콤비 플레이가 돋보이는 ‘탐정’이 각각 속편 제작에 뜻을 두고 의기투합했다. 김명민과 오달수가 주연으로 출연해 이미 2편까지 성공적으로 완주를 마친 ‘조선명탐정’도 3편을 위한 기획을 시작했다. ‘강철중’ 시리즈, 그보다 앞서 ‘여고괴담’ 등 한국 호러영화의 브랜드가 된 작품도 있었지만 사실 국내에서 시리즈 영화가 제작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쉴 새 없이 시리즈물을 내놓는 할리우드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마침 ‘미이라’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등 할리우드의 시리즈 영화들이 혹평과 함께 처참한 ‘흑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 시기를 틈타 충무로, 그리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들에 대해 살펴봤다.
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흥행작 안 부럽다
단순히 전편의 흥행성과와 후광효과만 바라보고 나섰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영화가 시리즈로 거듭 제작돼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려면 그만큼 관객에게 매력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이 매력은 캐릭터, 그리고 해당 영화가 내러티브 안에 구축한 세계관, 또 중심이 되는 스토리가 가진 확장성 등의 요소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이 요소 중 어느 하나만 무너져도 시리즈 영화의 성공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게 캐릭터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수도 없이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배우’로 꼽히면서도 미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어필하는 이유는 ‘록키’ 시리즈로 남긴 강한 인상 때문이다. 연기로 욕을 먹든, 영화를 엉성하게 만들어 관객의 눈을 아프게 만들었든 간에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이자 대표적인 시리즈물인 ‘록키’는 1980년대를 살았던 영화 팬들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로 인정받을 만하다.
극 중 록키가 보여주는 뒷골목 후진 인생의 성공기가 주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해석되곤 했지만, 한편으로 이 캐릭터는 남성성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현대 도시 남자들에게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고나 플라이 나우’(Gonna Fly Now)가 신명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트레이닝복 차림의 록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오를 때, 매번 한계를 시험하며 링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울 때, 그 순간을 지켜보는 관객은 극 중 록키의 감정에 완벽히 동화됐다. 4편과 5편이 혹평을 듣긴 했지만 시리즈가 7편까지 이어지는 동안 작품 대부분이 호평 속에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다.
캐릭터 매력 있어야 성공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는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다. 소설로 시작돼 영화만 무려 24편, 그 외에도 드라마와 기타 콘텐츠로 변주되며 끊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왕성하게 제작되고 있는 시리즈물은 슈퍼 히어로 소재 영화다.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 등 DC코믹스 계열 캐릭터들을 내세운 영화들.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마블코믹스에서 탄생시킨 캐릭터들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스파이더맨은 15년에 걸쳐 세 차례 리부트 과정을 거쳐 또다시 새롭게 다듬어낸 캐릭터로 팬들에 어필하고 있다. 7월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앞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톰 홀랜드가 연기한 스파이더맨의 매력을 충분히 부각시킨 데다 북미 지역 언론 시사회에서 이미 호평을 끌어낸 터라 국내 관객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충무로에서 만들어낸 몇 안 되는 시리즈물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꼽아보라면 역시 ‘강철중’을 말할 수 있겠다. ‘공공의 적’으로 시작해 ‘강철중: 공공의 적 1-1’까지 3편의 영화가 나왔고 형사에서 검사로, 또다시 형사로 캐릭터의 직업을 바꿔가며 사회의 악과 맞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충무로의 경우 성공한 시리즈물, 특히 잘 만들어진 캐릭터를 기반으로 시리즈가 연이어 성공한 케이스가 드물다. 그나마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전영록이 연기한 ‘돌아이’ 시리즈 정도가 있다. 3편까지 제작됐으며 당시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려먹기 하다 신세 망치기도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하고 ‘우려먹기’에만 열중하다 신세 망친 예도 있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전쟁’의 흥행실패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무려 12명의 작가를 투입해 시나리오를 짜고 2억6천만달러(한화 약 3천억원)란 시리즈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여 ‘마지막 한탕’을 노렸는데 결과는 실패다. 산만하고 장황한 내러티브와 오갈 데를 찾지 못하는 캐릭터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고, 북미 지역에서는 이미 저조한 흥행성적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개봉 당시 전작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오프닝 성적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한 정도의 관객을 모았다. 10년 전 시리즈 첫 편의 성적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한국 내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지만, 개봉작들과의 경쟁에 밀려 결국 300만 명 전후를 기점으로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까 예상된다. 중국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알 수 없지만, 제작비 대비 원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작을 통해서도 부실한 내러티브와 산만한 전개 등으로 욕을 먹었던 시리즈다. 그럼에도 오직 비주얼만 가지고 매번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거뒀으니 대중이 만만해 보였을 법도 하다. 적당한 선에서 그쳤어야지 이번엔 좀 심했다. 그러니 ‘의리’로 봐주던 대중도 화가 날 수밖에.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출연한 ‘미이라’는 희한하게도 북미 지역과 한국 지역에서의 운명이 엇갈렸다. 브랜든 프레이저 등 이전 ‘미이라’ 시리즈의 배우들 대신 톰 크루즈를 세우고 캐릭터 설정과 내용을 깨끗하게 갈아치우며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심각한 혹평 속에 흥행에도 깨끗하게 실패했다.
아이러니한 것이 국내 극장가에서는 관객 수 350만 명을 훌쩍 넘기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어마어마한 혹평 때문에 ‘미이라’ 시리즈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충무로 시리즈물 성공 역사 만들어질까
시리즈물이 만들어진다는 건 지속성과 확장성을 갖춘 매력적인 문화상품의 탄생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꿔 말해 영화계의 아이디어 고갈 현상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부정적인 평가를 듣지 않으려면 ‘전편보다 나은 속편’을 만들어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충무로에서 제작되고 있는 시리즈 영화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해적’의 경우 전작이 무려 86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여름 빅히트작 대열에 올랐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해상 전투신 등 다양한 볼거리로 중무장해 관객을 홀렸다. 다만 극 중 캐릭터의 힘은 미약했던 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 시리즈가 2편에 그치지 않고 3편까지 생명 연장을 원한다면 이번 기회에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조선명탐정’의 경우 ‘캐릭터발’이 꽤 돋보이는 시리즈다. 꽤 알찬 내러티브 구성에 김명민과 오달수가 명확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둔 터라 이번에도 ‘평타’ 수준의 완성도만 보이면 전작의 팬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 2편이 각각 470만 명, 380만 명 수준의 관객을 끌어들인 시리즈다. 단 관객 수와 비교하면 화제성이 떨어진다는 건 문제다.
권상우-성동일의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260만 명의 관객을 모아 ‘낫 배드’ 수준의 성과를 거뒀는데 속편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결국은 화제성을 끌어올리고 더 많은 관객을 모아 ‘전편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야 후일을 도모하는 게 가능해진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