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지난 달 14일 SBS 월화극 ‘엽기적인 그녀’가 방송 시작 후 처음으로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 시간대 1위에 올랐다’는 기사가 본방송 다음 날인 15일에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재미있는 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마저 ‘엽기적인 그녀’가 동 시간대 1위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된 건 ‘엽기적인 그녀’에 투입된 중간광고다.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지상파 3사의 중간광고. 프로그램 방송 중 투입되는 광고로 애초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 비지상파에 주어졌던 일종의 혜택이기도 했다. 콘텐츠 기획능력과 광고시장 장악력 등 방송계 전반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지상파가 비지상파에 밀리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들에게 ‘불법’으로 규정됐던 중간광고를 법망을 피해가는 방법을 쓰며 들이밀기 시작했다. 지상파가 예능을 넘어 드라마에도 중간광고를 도입한 지 한 달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해당 이슈로 말미암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1회 분량을 2회로 나눠 중간광고 투입
‘엽기적인 그녀’의 동 시간대 1위 달성 관련 기사가 애매하게 느껴졌던 건 중간광고 때문에 시청률 산출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엽기적인 그녀’는 총 16부작에 해당하는 분량을 32부로 나눠 그 사이사이에 중간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70분에 달하는 1회 분량을 35분씩 2회로 갈라놓고 하루에 2회 전부를 보여주되 그 사이에 중간광고를 넣는 식이다. 시청률 역시 하루에 방송되는 2회 분량을 각각 따로 산출한다. 사실상 하루치 방송 분량이지만 굳이 2회로 나눠 각각의 시청률을 따로 계산하는 셈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시청률 1위를 차지한 날, 애초 동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던 KBS 2TV ‘쌈, 마이웨이’는 1.1%포인트 하락해 9.8%를 기록하며 2위로 하락했다. ‘쌈, 마이웨이’가 중간광고 없이 70분 분량을 그대로 내보낸 상황에서 ‘엽기적인 그녀’가 2회 분량의 평균을 내지 않고 각각의 시청률로 환산해 조금 더 높게 나온 회차를 ‘최고 시청률’로 홍보한 것인데, 경쟁환경의 공정성이나 정확성을 따지자면 충분히 잡음이 나올 만하다. 실제로 14일 당일 ‘엽기적인 그녀’의 11회가 8.5%를, 12회가 10.5%를 차지했다. 2회 평균을 내면 9.5%다. 당일 9.8%로 2위가 된 ‘쌈, 마이웨이’보다 오히려 뒤처지는 기록이다.
하지만 KBS 측은 이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쌈, 마이웨이’에 중간광고가 도입되지 않아서 그렇지 KBS 역시 유사 정책을 택해 타 지상파와 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MBC ‘군주’, SBS ‘수상한 파트너’가 나란히 지상파 중간광고의 시작을 알린 데 이어 KBS 역시 새 금토예능드라마 ‘최고의 한방’에 중간광고를 넣었다.이어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도, 장수 예능 ‘해피투게더’에도 중간광고가 들어갔다. 지상파 3사가 보이지 않는 협의를 거쳐 나란히 자사 프로그램에 중간광고를 도입하며 방송계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지상파, “힘들다” 토로하며 중간광고 도입
“60초 후에 공개합니다”라는 멘트는 tvN ‘슈퍼스타K’에서 MC 김성주 덕분에 유행어로 떠올랐다. 이어 JTBC ‘히든싱어’의 MC 전현무가, 또 그 외 여러 프로그램들이 유사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비지상파 중간광고 시작을 알리는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문장이 됐다. 그만큼 중간광고는 비지상파 고유의 ‘밥그릇’으로 알려졌으며, 처음에는 방송 중간에 들어가는 광고에 불만을 토로했던 시청자들도 차츰 ‘비지상파’라는 핸디캡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게 됐다. 중간광고 시작 시점에 맞는 편집 방식을 도입해 전체 방송 분량 속에 자연스럽게 광고가 스며들게 한 비지상파 프로그램 제작진의 노력도 한몫을 했다.
비지상파가 프로그램의 편집방향을 조정해가면서까지 중간광고 투입에 열을 올린 건 그만큼 광고시장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광고는 프로그램 방송 중에 등장해 집중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만큼 단가 자체가 일반광고에 비해 높게 책정된다. 지상파보다 열악한 광고시장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야 했던 비지상파 광고영업 담당자들에게 있어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잇 아이템’으로 쓰일 수 있었다.바꿔 말해 지상파의 입장에서도 중간광고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tvN과 JTBC를 필두로 비지상파의 약진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지상파 인력이 비지상파로 넘어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선수’들의 이탈로 지상파가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콘텐츠 경쟁력과 채널 집중도가 떨어지면 서 자연스레 광고시장도 재편되고 있다. 비지상파를 ‘일개 케이블’로 취급하며 무시하던 지상파는 태도를 바꿔 ‘우리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지상파는 비지상파보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비율이 높은 데다 드라마는 편 수가 눈에 띄게 많아 ‘유지’가 쉽지는 않다.
특히 드라마는 제작비 단위가 워낙 큰 데다 제작 환경까지 갖춰야 여러 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까지 비지상파는 지상파의 드라마 제작 편수를 따라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tvN이 일주일에 두 편, 많게는 세 편까지 방송을 하고 있으며 JTBC는 주당 두 편을 내보내다가 현재 한 편으로 줄였다. 현재 JTBC 내에서도 주간 단위로 두 편의 드라마를 편성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외의 비지상파는 드라마를 만들지 않고 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 그만큼의 광고를 끌어와야 하는데 채널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어설픈 완성도를 보였다가는 오히려 손해가 커지니 제작하지 않는 쪽을 택한 셈이다.이처럼 광고시장의 재편, 그리고 드라마의 수익구조 등을 살펴보면 꾸준히 자사에서 가진 드라마 슬롯을 여러 편의 작품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지상파가 가지는 매출에 대한 부담도 이해는 간다.
방송계·시청자 불만 고조
하지만 엄연히 말해 현 방송법은 지상파의 중간광고를 금하고 있다. 현재 지상파가 내보내는 중간광고는, 그런 이유로 ‘중간광고’가 아닌 ‘프리미엄 광고’(PCM)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물론 지상파 3사가 인위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본방송 내에서 포인트를 잡아 광고를 내보내고 자연스럽게 다시 본편을 보여주는 비지상파의 중간광고와 달리, 사실상 1회 분량에 해당하는 방송을 굳이 회차를 나눠 갑작스레 끊어버리고 광고를 보여준다. 광고와 본편 사이에는 ‘잠시 후 다음 회차가 방송된다’는 식의 자막과 해당 방송의 타이틀 로고 등이 나간다. ‘엽기적인 그녀’의 일일 방송분 시청률을 2회 평균으로 계산하지 못하는 이유도 편성표상에서 이 드라마가 총 2회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1회 분량 편성하에 드라마 중간에 광고가 들어가면 엄연히 불법이기 때문에 억지로 회차를 나눠 광고를 보여주는 ‘꼼수’를 쓰게 된 것이다.
중간광고 선점을 위한 지상파의 노력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상파가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더 잘 먹고 살겠다는 거냐’는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방송계 내에서 견해차가 뚜렷했고 결국 방송법 시행령 개정 시도 역시 시청자와 언론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KBS의 경우 ‘수신료를 받아 챙기면서 중간광고까지 가져가려 하느냐’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방송법 개정이 쉽지 않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지상파 3사가 연합을 이뤄 변칙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인데 일단 당장은 이에 대한 부작용이 심하다. 중간광고가 정착된 비지상파와 달리 인위적으로 본방송의 흐름을 끊어가며 광고를 넣는 지상파의 수법에 시청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중간광고 도입에 대한 어떤 공지도 없이 돌발적으로 시행한 탓에 일부 시청자는 지상파가 드라마를 2회 연방 편성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방송계 안에서는 당연히 지상파의 움직임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계뿐만 아니라 시청자를 설득할 방법을 내놓지 않는 이상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