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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Jul 11. 2017

지금은, 힐링예능 전성시대

[대중문화 이야기]

                                

‘비상식’과 싸우던 지난겨울을 지나 이제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느라 분주한 시기다. 팍팍한 현실이 당장 바뀔 순 없겠지만 기대감이 충만하니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때마침 안방극장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도 ‘힐링예능’으로 바뀌었다. 이미 나영석 PD가 ‘꽃보다 할배’와 ‘삼시세끼’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 분야를 개척했는데, 최근 들어 타 방송사에서도 연이어 ‘탈도심’ ‘힐링’ 등의 콘셉트가 가미된 기획을 내놓으면서 소위 ‘힐링예능 트렌드’가 만들어졌다. 나영석 PD의 ‘윤식당’이 기대치를 뛰어넘는 ‘대박’을 터트린 직후라 그 뒤를 이을 히트작은 어떤 프로그램이 될지 관심이 고조된다. ‘섬총사’ ‘효리네 민박’ ‘비긴 어게인’ ‘하하랜드’ 등의 프로그램이 ‘윤식당’을 넘어서고자 출사표를 던진 ‘힐링예능’ 후발주자들이다. 


JTBC '효리네 민박' 

‘힐링’, 수년간 방송계 흔들었던 주요 아이템

‘힐링’이란 단어가 방송계 전반의 트렌드가 된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경제적 여유를 위해 그저 참고 참으며 팍팍한 삶을 살아가기보다 정신적인 포만감을 추구하는 소위 ‘욜로족’이 증가하면서 방송계에서도 이런 사회현상을 반영해 시청자들과의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다.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거나 속 시원한 한마디로 가슴을 뻥 뚫어주는 ‘강연쇼’도 일종의 ‘힐링’ 트렌드가 반영된 프로그램이었으며 소탈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토크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획이다. 

SBS는 아예 ‘힐링’이란 단어를 제목에 반영해 ‘힐링캠프’(2011~2016)라는 타이틀의 토크쇼를 제작했으며, 편안한 캐주얼 룩을 입고 게스트가 원하는 형식에 맞춰 진행되던 이 토크쇼는 한때 동시간대 정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잘 차려입은 진행자와 게스트가 무대 위에 마주 앉아 최대한 격식을 갖추며, 또는 진행자의 집요한 물음이나 장난기에 난감해하며 대화를 주고받던 기존의 토크쇼와 달리 ‘게스트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듯한 콘셉트의 진행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토크쇼의 시대가 저물고 강연쇼가 방송계에서 ‘통하는 기획’으로 떠오르면서 이 기획 역시 조금씩 진화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tvN '섬총사' 

그중 JTBC의 ‘말하는대로’는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듯 해당 방송 회차의 게스트로 초대된 강사가 불특정 다수의 시민 앞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시민들과 근접거리에서 대화하고 서로 아픔을 달래주기도 하면서 강연쇼에 ‘힐링’ 트렌드를 잘 접목한 기획으로 불렸다. 길거리에서 청중을 쓸어모으는 낯선 콘셉트에 시민들도 곧 적응했고, ‘말하는대로’는 ‘내 얘기’를 들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소통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힐링 강연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JTBC의 또 다른 프로그램인 ‘김제동의 톡투유’는 아예 ‘소통’과 ‘힐링’을 전면에 부각시키며 시청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강연장에서 MC와 패널, 게스트의 말을 들어보는 동시에 청중들도 주어진 소재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하였다.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다가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오면 함께 눈물 흘리고 안타까워하며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쇼에 ‘힐링’ 트렌드를 잘 접목시킨 케이스다. 


tvN '윤식당' 


탈도심, 한적한 시골에서 힐링 라이프

나영석 PD는 tvN으로 이적한 후 과거 ‘1박2일’의 성공 노하우를 살려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내놨다. 방송 당시 나영석 PD가 ‘1박2일’ 콘셉트를 적절하게 잘 살려냈다는 칭찬, 칠순-팔순이 된 원로 배우들을 예능의 중심으로 끌어내는 참신한 시도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그리고 또 하나, ‘꽃보다 청춘’ ‘꽃보다 누나’ 등으로 이어진 ‘꽃보다’ 시리즈가 주안점을 뒀던 부분이 있으니 바로 ‘힐링’이다. 평생을 연기에 바친 노배우들이 해외 배낭여행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을 달리한다. ‘꽃보다 누나’에 출연했던 고 김자옥은 항암치료로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단순히 출연자들의 눈물을 통해 감동을 유도하는 데 집중했다는 말이 아니다. 평소 그들이 출연작이나 공식석상에서 보여주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끌어내 공감을 샀다는 게 중요하다. 


tvN '윤식당' 


이 과정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지켜보는 시청자들 역시 그 자연스러움에 동화돼 마음이 편안해졌다.나영석 PD가 만든 또 다른 프로그램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어촌이나 산골마을에서 직접 세 끼를 만들어 먹는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준 ‘힐링’ 콘셉트의 예능이다. 농사나 낚시로 먹을거리를 조달하고 솥을 걸고 불을 때 밥을 짓는다. ‘잘나가는 스타’들이 밥 한 끼 해결하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불씨와 씨름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고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들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이란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출연자들은 바쁜 연예계 스케줄에서 벗어나 시골 생활을 경험하면서, 물론 그것도 일의 일환이긴 하지만 어쨌든 평소와 달리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자연을 만끽한다. 시청자들도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잠시나마 ‘탈도시’를 꿈꾸게 된다. 

이런 ‘힐링’ 콘셉트를 최대치로 부각시킨 예능이 최근 성공리에 방영을 마친 ‘윤식당’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기획을 한층 더 발전시켜 아예 현지에 식당을 차리고 잠시 살아보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휴양지에 갈 때면 으레 한 번씩은 생각해보는 ‘여기에 식당이나 차리고 살면 어떨까’라는 로망을 현실화했다. 그리고는 정말로 ‘별것’ 없이 상당히 한가하게 일하고 즐기며 살아보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맛을 끌어내 보겠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더 벌겠다며 아등바등하지는 않는다. 그저 본인들의 만족을 우선시했다는 말이 맞겠다. 빵 터지는 웃음이나 자극적인 요소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 ‘별것’ 없는 예능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방송계 ‘힐링 트렌드’는 더욱 폭넓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JTBC '효리네 민박' 


‘섬총사’ ‘효리네 민박’ 등 ‘힐링예능’ 후발주자 등장

tvN은 ‘윤식당’이 끝나고 나서 또 다른 ‘힐링예능’을 내놨다. 강호동-김희선-정용화가 섬마을로 들어가 생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섬총사’다. ‘윤식당’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상당수 도시인의 로망을 실현해주기엔 충분하다. 수돗물이 끊겨 씻지 못하고 집 안에 벌레가 들끓는 어촌 마을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유쾌하고 웃고 떠드는 출연자들 덕분에 분위기는 한껏 밝게 묘사된다. 웃음과 재미를 살려내며 ‘예능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면서 ‘힐링’의 개념까지 살려낸 예능 프로그램이다. ‘윤식당’처럼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5월 22일 첫 방송 이후 은근한 호평을 자아내고 있다.

6월 중순 첫방송돼 연일 자체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JTBC ‘효리네 민박’도 ‘힐링예능’의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수 이효리와 남편 이상순이 실제로 거주하는 제주도의 자택을 일반인 대상 민박집으로 바꿔 운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출연을 희망한 일반인들을 선별해 실제로 이효리의 집에서 민박하게 만들고 이효리와 이상순은 민박집 호스트가 돼 서비스한다. 여기에 아이유가 민박집 스태프로 나서 이효리와 이상순을 돕는다.


JTBC '비긴 어게인' 

JTBC의 또 다른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은 이소라-윤도현-유희열 등 뮤지션들이 외국으로 날아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한국 음악을 외국에 알린다는 차원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초심을 떠올리는 뮤지션들의 모습과 그들이 연주하고 관객과 호흡하는 장면이 전해주는 ‘힐링효과’로 만만치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귀를 즐겁게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평화로운 이미지로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착한 예능'이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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