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MBC-KBS-SBS, 그리고 JTBC까지 방송 4사가 대선 당일 선거방송으로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보도 기능이 있는 타 종합편성채널과 YTN 등이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투표 및 개표 상황을 전하고 분석한 데 반해 지상파 3사와 JTBC는 수개월 전부터 TF를 구성해 시청자를 잡아끌 만한 무기를 개발하고 5월 9일 전면전을 치렀다. 그중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생방송이 관건이다. 투표 마감, 그리고 개표 현황과 출구조사 결과를 보여주고 당선자 공지까지 알려주는 방송이다. 시청률과 화제성, 주목도 면에서 당연히 지상파 3사가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기에 JTBC가 끼어들어 선전하면서 4사 간 대결이 됐다. 수차례 선거방송에서 지상파와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물량을 투입했던 JTBC가 뜻밖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데에 위기감을 느낀 지상파 3사는 자체적으로 연대해 출구조사 결과에 대한 보안을 강화했으며 CG 등 그래픽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지상파의 권위를 보여주려 했다. JTBC는 광화문 현장에 열린 스튜디오를 만들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선거방송을 만들어 이에 맞섰다
SBS, 이번에도 막강한 그래픽과 패러디로 승부
이번 선거방송에서 KBS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정통적인 형식의 보도를 추구했다. 그리고 SBS와 MBC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물량공세로 맞섰다. JTBC 역시 매 상황을 분석하고 타사 뉴스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는 자사 보도 형식을 무기로 내세우며 맞섰다. 달라진 게 있다면, SBS와 MBC처럼 JTBC도 광화문에 오픈 스튜디오를 만드는 등 스케일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SBS와 MBC가 그래픽에 수십억원을 투입하는 등 막대한 예산을 쓴 것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SBS의 선거방송은 매번 화려하고 재치있는 CG를 사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대선 방송 역시 그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4`13 총선 당시에도 SBS의 선거방송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과 등장인물에 각 당의 후보의 얼굴을 덧입혀 패러디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어마어마한 노력과 예산에 비한다면 시청률이 타사를 압도했을 정도로 높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두고두고 화제가 됐고 무엇보다 선거를 대국민 축제의 이미지로 부각시키는 데에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에도 SBS는 화려한 CG 안에 위트와 유머감각을 가미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해 온라인상에서 마니아층까지 형성했다. ‘대선게임 권좌를 찾아서’라는 타이틀하에 문재인-안철수-홍준표 등 3위권 후보들을 ‘왕좌의 게임’ 캐릭터들에 절묘하게 합성했다.
갑옷 차림의 후보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서로 창을 겨누며 격돌하는 신,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앞에 군림하는 홍준표 후보를 보여주는 신 등 출구조사 결과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뿐 아니라 웃음까지 자아냈다.
대구 지역 출구조사 결과를 보여줄 때는 문재인-홍준표 두 후보가 운동장을 달리는 중 올림머리를 한 채 그네에 앉아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상당히 익숙한 한 여성의 뒷모습을 연출해 시청자들을 또 한 번 웃게 하였다. 그 외에도 CG 만으로 360도 가상현실(VR) 영상을 보여주는 등 블록버스터급 물량으로 이날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MBC도 물량으로 맞불, KBS는 정통 보도방식 사수
SBS의 화력에 MBC도 물량과 아이디어로 맞불을 놨다. 청와대 내부를 CG로 재현해 곳곳을 둘러보는 등 가상 스튜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국내 최고층 빌딩 롯데타워 외벽을 투개표 상황판으로 이용했다. VR(가상현실) 기법으로 지역 명소를 재현해 재미를 높이기도 했다.
자사 히트 예능 ‘복면가왕’을 패러디해 ‘복면표왕’이라는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용됐으며, 상위 3위권 후보의 이미지에 가면을 씌워뒀다가 한 템포 늦게 얼굴을 공개하는 등 ‘복면가왕’의 콘셉트를 살렸다. 지역별 출구조사 1위 후보가 손을 흔들고 춤을 추는가 하면 2, 3위 후보는 손뼉을 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KBS는 이번에도 지극히 정통적인 보도형식을 고수했다. 앵커들이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뉴스데스크에 앉아 정자세로 진행했으며 정확한 개표상황, 그리고 각계의 반응들을 꼼꼼하게 전하는 데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타 지상파의 물량투자를 의식했는지 위트 있는 코너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자사 장수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패러디하며 ‘전국득표자랑’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전국노래자랑’의 MC 송해가 등장해 개표 상황을 전하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KBS는 광화문광장에서 '스파이더 캠 AR(증강현실)' 영상을 찍어 역동적인 화면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JTBC는 광화문에 설치한 공개형 오픈 스튜디오와 상암동 본사 ‘뉴스룸’ 스튜디오를 동시 연결하며 개표상황을 전했다. 손석희 앵커가 광화문으로 나가 직접 시민들 앞에 서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통했다. 오후 6시부터 6시간에 걸쳐 진행된 생방송은 3부로 나누어졌으며, 유시민 작가가 3부 전체를 함께했다. 1부에서는 tvN '윤식당'으로 상종가를 치는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깐깐한 유권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러 전문가가 패널로 나와 손석희 앵커와 함께 개표 상황을 분석했다. 기존에 JTBC의 선거방송이 주로 본사 ‘뉴스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오픈 스튜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민들과의 ‘소통’에 주안점을 뒀다.
결과는 JTBC-KBS 승! 물량보다 내실이 우선
SBS의 CG는 이번에도 온라인상에서 꽤 화제가 됐고, MBC의 물량 투입 역시 다양한 이슈를 생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청률 경쟁에서는 ‘물량’보다 ‘내실’이 이겼다. 대선일 당일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진행된 방송 4사의 선거방송 경합에서 우위를 차지한 건 KBS와 JTBC였으며, 여러 가지 핸디캡을 고려할 때 사실상 JTBC의 승리라고 보는 게 맞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시청률로 따졌을 때, KBS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 2부와 ‘9시 뉴스’는 각각 12.2%와 14.8%를 기록했다. JTBC는 비지상파라서 유료가구를 기준으로 시청률을 환산했는데 ‘특집 뉴스룸’ 1부가 6.2%, 2부 9,4%, 3부 8.2%로 전국 단위 지상파 시청률로 산출한 KBS의 뒤를 바짝 쫓았다.
반면에 MBC는 개표방송 1부가 2.8%, 2부 5.9%, 3부 3.9%의 저조한 기록에 그쳤다. SBS 역시 물량에 비해 아쉬운 결과를 얻었다.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3부가 7.2%, 나머지는 그보다 아래에 머물렀다. 지상파 3사와 JTBC를 제외한 타 채널의 선거방송은 대개 1%에서 2%대를 오가는 수준에 그쳤다.
또 다른 시청률조사 회사 TNMS의 2049 타깃 시청률을 살펴보면, JTBC가 2.2%로 지상파 전체를 제치고 전 채널 1위를 차지했다. SBS가 1.2%, MBC는 1.2%, KBS는 1.1%를 기록했다.
대선 당일 서울권에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으로 악화하고 심지어 생방송 시간 즈음 비까지 내려 광화문광장에도 시민들의 숫자가 예상치보다 낮았던 게 사실. 이 때문에 잠실 롯데타워를 전광판으로 활용한 MBC의 전략이 빛을 발하지 못했고 타 방송사들의 광화문광장 공략도 신통치 못했다. JTBC의 오픈 스튜디오 역시 날씨 문제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으나 타사보다 월등히 많은 시민이 현장에 몰려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