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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Jul 11. 2017

승승장구 김수현, 영화 '리얼'에 발목 잡혀

[대중문화 이야기]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데뷔 후 줄곧 승승장구하던 톱스타 김수현이 영화 ‘리얼’(6월 28일 개봉, 감독 이사랑)에 쏟아지는 혹평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1인 2역으로 열연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형편없는 완성도로 비난받고 있어 주연배우 김수현이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김수현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드라마 ‘프로듀사’ 등 완성도 면에서 평가가 엇갈렸던 작품마저 본인의 연기력과 인지도로 흥행작 대열에 올려놨던 배우다. 그러나 ‘리얼’은 만듦새에 있어 누구 하나 편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어 살려내기가 불가능하다. 한국 영화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만인이 혹평을 쏟아내는 상황. 데뷔 후 줄곧 ‘꽃길’을 걷던 배우 김수현으로서는 넘어서기 어려운 장애물 하나를 만났다.



영화 ‘리얼’, 문제적 만듦새로 비난 세례

대개 한 편의 영화가 어떤 이유로든 논란의 중심에 설 때면 찬반 여론이 양측으로 형성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그나마 논란이 될 만한 수준도 아니라면 대개 이런 경우엔 감독이나 배우나 각본이나 자본이나 심지어 영화사나 제작자나 뭐 하나 관심을 끌 만한 부분이 없을 때 해당하지만, 어쨌든 그럴 때는 잠시 극장에 걸렸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딱 적당한 예가 2007년 개봉된 심형래의 연출작 ‘디 워’와 이 영화를 둘러싸고 불거진 논란이다. 심형래가 제작과 연출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대활약’했던 이 영화는 당시 애국심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두며 열혈 팬층을 형성했다. ‘디 워’의 팬들은 입을 모아 영화의 완성도 문제를 지적하는 평론가들과 기자들에 격렬하게 맞섰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살려준 영화라고 추켜세우는 이가 부지기수였고, 잘난 체하는 기자와 평론가들이 한국 영화계의 암적인 존재라며 욕을 퍼붓는 이도 많았다. ‘디 워’는 분명 어설픈 연출력으로 허점투성이가 됐던 영화인데다 그렇게도 극찬했던 CG 역시 300억원대의 제작비를 고려한다면 당시 영화계의 기술력에 비해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누리며 전국적으로 84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들인 돈이 많아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거두진 못했지만 화제작 반열에 오른 것만큼은 분명하다.



1996년 김기덕 감독이 데뷔작 ‘악어’를 내놨을 때도 이 영화를 둘러싸고 평단에서 찬반여론이 형성됐다. 대부분의 평자가 김기덕의 거친 연출과 과감한 표현력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일각에서 이 영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중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가운데 일부 관객은 김기덕의 연출세계에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김기덕 감독은 논란의 중심에서 영화를 시작해 수차례나 더 논란을 만들어내는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하며 해외로 나가 거장 반열에 올랐다.이렇듯 어떤 영화든 그 가치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한쪽에서는 옹호하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리얼’은 호평을 아예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과히 ‘기록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영화가 언론에 공개된 직후 각 매체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공격적인 표현을 써가며 ‘리얼’이 얼마나 형편없는 작품인지 알리려 애썼다. 수년간 찾아보기 어려웠던 수위 높은 혹평이 쏟아졌고, 아예 조롱으로 일관하거나 별점 주기를 거부하는 평자도 속출했다. 더 큰 문제는 주연배우 김수현의 팬들마저 이 영화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얼’, 회생가능성 없는 졸작

쏟아진 혹평처럼 ‘리얼’은 한국 영화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졸작이다. 영화의 스토리를 설명하기부터 쉽지가 않다. 자아분열증을 앓는 조폭 출신 사업가와 그와 닮은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이고 김수현이 1인 2역을 맡아 두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 자아분열증이란 소재 탓도 아니다. 혹은 “이상하고 특별하고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사랑 감독의 궤변처럼 작가주의 또는 컬트 영화를 표방했기 때문도 아니다.작가적인 관점에서 실험했다면 혹은 그 표현 방식이 난해하다고 해도 논쟁의 여지가 발견되기 마련이다. ‘리얼’에서는 그 논쟁의 여지마저 찾아볼 수 없다. 손현주, 수지, 아이유, 박서준 등 카메오로 출연했다고 알려진 스타들은 영화 속에서 숨어 다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조연 캐릭터를 맡은 이경영의 분량은 통편집 수준으로 잘려나갔다. 주요 캐릭터들을 설정했다가 날려버리고 오직 김수현만 보여준다. 김수현과 설리의 벗은 몸과 베드신도 보여준다. 노출신은 지극히 작위적이고 그저 눈길을 끌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저 김수현이란 한류 스타를 내세워 돈벌이하려고 기획된 영화인데, 그렇다면 충분히 상업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만들어야지 심각하게 완성도가 훼손된 상태에서 ‘모험이나 도전’ 운운하며 변명하는 건 안될 말이다.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리얼’은 제작과정에서 풍파를 겪으며 산산이 부서진 상태에서 그나마 찍어둔 신과 신을 억지로 연결해 간신히 숨만 쉬는 ‘식물인간’ 상태다. 관객에게 말을 걸지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못한다.3년 전 누적관객 수 1천700만 명을 모은 ‘명량’ 역시 3시간 분량을 2시간 수준으로 압축시키는 과정에서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날아가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필자는 당시 ‘명량’을 두고 ‘과대평가된 미완성작’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럼에도 ‘명량’은 후반부 해상 전투신 등 인정할 만한 장점이 있어 열광하는 관객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리얼’의 경우는 다르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맡았던 이정섭 감독이 하차하면서 연출자가 김수현의 이종사촌 형인 이사랑 감독으로 바뀌었다. 연출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 115억원에 달하는 영화의 연출을 맡았다니 황당한 일이다.



김수현 책임론 대두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수현의 입장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리얼’의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됐다. 주제넘게 나서는 이가 꽤 많긴 하지만 어쨌든 배우가 연출이나 제작 전반에 직접 관여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고, 영화는 특히나 감독의 역량에 따라 완성도가 좌지우지되는 터라 ‘김수현이 뭔 잘못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김수현의 연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으니 나름 제 몫은 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본인의 출연 분량이 전체 신의 90%에 달하는 영화를 찍으면서 이 영화가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을 때 도대체 ‘김수현은 뭘 했나’라는 궁금증이 생기긴 한다.



이종사촌 형인 감독 이사랑을 옹호하느라, 그놈의 정 때문에, 또 오직 자신을 바라보고 선뜻 거액을 내놓은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렇게 김수현은 묵묵히 카메라 앞에 섰을 테다. 그래서 안타깝다.김수현의 남다른 존재감은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자이언트’ 등에 아역으로 출연할 때부터 돋보였다. 호감형의 이목구비에 굵직한 음성, 과장되지 않은 톤의 편안한 표현력 등 또래 연기자 중에서도 발군이라 할 만큼 ‘성공할 만한 배우의 자질’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해를 품은 달’의 몰입도를 높인 일등공신이었고, 외계인이란 과한 설정까지 매력으로 승화시키며 ‘별에서 온 그대’의 성공을 이끈 배우였다. ‘주연배우’와 ‘톱스타’의 조건을 고스란히 갖추고 간혹 연출자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해도 자신의 능력으로 작품을 제 궤도까지 끌어올리곤 했다. 그래서 이번 실패는 더 아쉽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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